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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이야기들-1960년대중

황야의 무법자 와 (속) 황야의 무법자 리뷰 + 동영상 모음

by 음악평론가김제건 2018. 6. 4.
황야의 무법자 와 (속) 황야의 무법자 리뷰 + 동영상 모음
Per Un Pugno Di Dollari (A Fistful Of Dollars, 1964) +
Per Qualche Dollaro In Piu (For A Few Dollars More, 1965)
감독:Sergio Leone / 주연;Clint Eastwood / 음악: Ennio Morricone



오래전부터 인류 역사의 발전은 주로 개혁(Reformation)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었다.
물론 영화계도 다르지 않아 간간히 개혁적인 문제작들이
등장하면서 그동안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는데,
1964년 9월에 이태리에서 발표가 된
‘황야의 무법자(Per Un Pugno Di Dollari)’란 영화도
당시로서는 영화계에 거의 혁명에 가까울 정도로 파격적인
개혁 성향의 작품이었다고 할 수가 있다.



우선 이 작품은 서부 영화의 그동안의 대표적인 고정 관념,
(큰) 세 가지를 타파했다고 자부하는데,
1) 서부 영화는 언제나 많은 돈을 들여서 미국 할리우드에서만
제작을 한다는 관념을 깼으며,
2) 서부 영화의 (존 웨인 같은) 점잖고 신화적인 주인공은
언제나 옳고, 항상 지지 않으며, 이기기만 한다는 관념을 깼고,
3) 또 영화음악은 언제나 촬영 후 거창한 악단 연주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관념을 깼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그래서 서부영화 장르에 나오던 음악의 비중을
기존의 영화들보다 훨씬 더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점이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의 위대한 업적중 하나이다].



20세기 초반, 무성 영화시대에 감독이었던 아버지,
빈센조 레오네(Vincenzo Leone)
여배우였던 어머니, 바이스 와레란(Bice Waleran) 사이의
영화인 가정에서 태어난 개혁적 성향의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 1929-1989, 이태리 로마).



10대 때부터 단역 배우와 감독 보조로서 이태리 영화계에
이미 종사하기 시작 하였다는데,
시나리오 작가로서도 서서히 명성을 얻어가던 20대 젊은
시절에,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영화 제작을 위해
유럽으로 촬영을 온 미국 현지 팀에 감독 보조(Second
Unit Director)로 합류를 하면서 (할리우드 제작 방식 등)
많은 걸 배우게 되고, 이후, ‘쿼바디스(Quo Vadis. 1951)’,
‘벤허 (1959)’, ‘소돔과 고모라(1962)’등의
촬영에도 조감독(Assistant Director)으로 참여를 하게 된다.
그리고 1961년에 드디어 감독으로서 첫 작품인 그리스 사극
(280 BC 때의 이야기), ‘Il Colosso Di Rodi’를 발표하였지만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한다.



‘황야의 무법자(1964)'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세르지오 코르부치(Sergio Corbucci. 1926-1990. 로마)라는
레오네의 선배가 되는 감독이 만들었던 이태리의 서부극,
‘그랜드 캐넌의 대학살(Massacro Al Grande Canyon)’
1964년 봄에 로마에서 개봉이 되었었다.
그런데 이런 세르지오 코르부치는 오늘 날
‘또 다른 세르지오(The Other Sergio)’라고 평가 절하되어
불리고 있고, 오히려 후배인 세르지오 레오네가 1970년대까지
무려 약 600여 편이나 제작이 되었던 '이태리 서부극의 개척자'로
불리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더군다나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대단한 히트작인
‘장고(Django-1966년 12월 미국 개봉)’
이 ’황야의 무법자(1967년 1월 미국 개봉)‘보다 미국에서 더
빨리 개봉을 하였으며, 또한 스페인에서는 1961년에 이미
‘야만인의 총(Tierra Brutal-Savage Gun)'이라는
서부극이 만들어 졌고, 또 1963년에도 미국인 배우,
리처드 해리슨(Richard Harrison. 1935. 미국)을 기용한
‘그링고(Gringo-Duello Nel Texas-Gunfight At Red Sands)‘라는
스페니쉬 웨스턴이 개봉되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더 그러하다.
어쨌든 이웃나라 스페인에서의 이런 움직임도 예의 주시하였고,
또 같은 고향의 선배인 코르부치의 협조도 받으면서,
(감독 데뷔 후) 두 번째의 작품을 서부극으로 기획한 레오네는
미국 시장(배급처: 미국 UA)을 겨냥해 대 배우,
헨리 폰다(Henry Fonda)찰스 브론슨(Charles Bronson)
섭외 하였지만 유럽까지는 올 수가 없다는 대답만 듣게 되었고,
그래서 할 수 없이, 꿩 대신 닭이라고 미국의 인기 TV 시리즈
(서부극)이었던 ‘로하이드(Rawhide)‘에 출연하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1930, 미국)
촬영지인 스페인의 황야(오지)로 부르게 된다.



1961년에 발표가 된 일본인 명감독,
구로자와 아키라(Akira Kurosawa. 1910-1998)
‘요짐보(Yojimbo-用心棒)’(이후 1996년에 브루스 윌리스의
‘라스트 맨 스탠딩’으로도 리메이크)를 시나리오의 주축으로 하여
만들어진 이 영화가 한 달 전에 먼저 개봉이 된
‘장고(Django. 1966)’와 함께 큰 히트를 하게 되자,
그동안 고정 관념 속에 있던 할리우드 영화계와 또 무척 애국적
이었던 미국 평단에서는 온통 난리가 났다.
대부분의 미국 평론가들이 모조리 혹평들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마카로니 웨스턴’(또는 ‘스파게티 웨스턴’) 이라는 별칭으로
폄하를 하였고 심지어는 형편없는 변방의 감독들이 만든 싸구려
창녀와도 같은 영화라고도 악평을 하였는데,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멸시하던 이 레오네가 20년 후인,
1984년에 모든 평론가들이 명작으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원스 어펀 어 타임 인 어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만든 장본인이 될 줄은 미처 몰랐었던 것 같다.
여하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라는 그레샴의 법칙이 그동안 낭만적이기만 하던
이 서부극 장르에도 적용되는 게 아닌가하는 일반 관객들의
우려를 낳았던 이 이태리 산 ‘마카로니 웨스턴‘
어쨌든 여러 가지 이유로 신선한 충격을 당시에 주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동안 존 웨인 같은 배우들이 보여주었던
미국 정통 서부극의 낭만적인 주인공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1930, 미국 SF).
우선 첫눈에 보이는 의상부터가 달랐다.
누더기와 다름없는 멕시칸 판초를 파격적으로 걸쳐 입고,
입에는 시가 꽁초를 문채, 주름이 깊게 패 일 정도로 찡그린
그의 특이한 인상은 오히려 카리스마가 넘쳐나는 색다른
‘마초(Macho)’로서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돈만 밝히는 기회주의자 같은 행동으로 인하여,
갱들에게 죽을 정도로 흠씬 얻어터지고 또 린치를 당하는
이 주인공의 모습 역시 과거의 할리우드 서부극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지만, 이 무법자 삼부작 시리즈를 통해
이스트우드는 일약 월드스타로 발돋움을 하게 된다.
[이 첫 작품에서의 그의 출연료는 단돈 만 오천 달러이었으나,
삼 부 작의 마지막 편인 ‘석양에 돌아오다(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에서는 이십오만 달러를 받게 되고,
옵션 등으로 받은 돈을 합쳐서 자신의 프로덕션을 차리는데
자본금으로 사용을 하고, 이후 1971년에 자신의 첫 감독 작품인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Play Misty For Me) 를 제작하는 계기가 된다.]




한편 대사를 중시하지 않고, 오히려 대사보다는 인상을 쓰는
얼굴 표정과 눈동자, 그리고 총 같은 소품들을 극도로
클로즈 업 하는 등,
[그 큰 스크린에 얼굴이 반밖에 안 나온다. / 레오네의
전매특허: Tight Close-Up & Long Wide Angled Shot]
레오네 만의 독특한 촬영기법 역시도 새로운 볼거리였지만,
(촬영감독:Massimo Dallamano)
무엇보다도 재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 파격적인 스타일의
주제곡(Main Theme)과 전체 영화 음악(OS)이야 말로
이 마카로니 웨스턴의 매력을 한층 가중 시켰다.
나이는 한 살 차이가 나지만, 세르지오 레오네와는 학교 동창
사이로서, 로마의 클래식 음악 학교에서 트럼펫을 전공하던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1928-2020. 로마)
이 레오네 덕분으로 본격적인 영화음악을 이렇게 만들게 된다.
(생전에 500편이상의 영화음악을 만든 모리꼬네이지만
이 영화가 바로 그의 공식 데뷔 후 첫 성공작이다.
그전에는 창피하다고 가명을 사용한 비공식 관여 작품들도
물론 몇 개 더 있었다고 한다)

이후 모리꼬네가 만든 음악들로 해서 레오네의 영화들도
더 빛을 발하였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동업자(협력자/
Collaborator)로서도 큰 도움을 준 셈 이고
히치콕(Alfred Hitchcock) 과 버나드 허맨(Bernard Herrmann),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와 니노 로타(Nino Rota)

계보를 잇는 영화계의 유명한 명콤비, 짝꿍이 되었다.
신세대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를 비롯한 여러 젊은 영화인들도
20세기의 영화계에서 가장 위대한 명콤비로 바로 이 두 사람을
꼽는데 주저하지를 않았다.



(주) 기억해둘만한 또 다른 명 콤비(Collaborator) 감독들과 작곡가들:
베르나르도 베르토루치(Bernardo Bertolucci) - 사카모토 류이치(Ryuichi Sakamoto)
팀 버튼(Tim Burton) - 대니 엘프먼(Danny Elfman)
데이빗 린치(David Lynch) - 앤젤로 바달라멘티(Angelo Badalamenti)
테렌스 영(Terence Young) - 존 배리(John Barry)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
데이빗 린(David Lean) - 모리스 잘(Maurice Jarre)
제임스 캐메론(James Cameron - 제임스 아너(James Horner)
후랑소와 트뤼포(Francois Traffaut) - 조르주 드를뤼(Georges Delerue)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Stallone) - 빌 콘티(Bill Conti)
끌로드 를루슈(Claude Lelouche) - 후랑시스 레이(Francis Lai)
블래익 에드워즈(Blake Edwards) - 헨리 맨시니(Henry Mancini)
뤽 베송(Luc Besson) - 에릭 세라(Eric Serra)
데이빗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 - 하워드 쇼어(Howard Shore)
브라이언 드 팔마(Brian De Palma) - 피노 도나지오(Pino Donaggio)
다리오 아르젠토(Dario Argento) - 고블린(Goblin)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 레니 니하우스(Lennie Niehaus)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1928-2020. 로마 -위의 사진)
역시도 상당히 개혁적인 좌파 출신으로서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영화 촬영 전에 미리 주제 음악을 만들어 감독에게
전달하는 등, 새 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음악을 들으면서 촬영을 하게 만들어줌),
그리고 그동안 오랜 세월동안 관현악적(Symponic)인 영화 음악에
익숙하던 관객들에게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던 소리들,
예를 들어, 채찍 소리라던가 종소리, 휘파람소리 그리고
하모니카와 전기기타 등을 사람 목소리(코러스)와 잘 섞어가면서,
전혀 새로운 방식의 음악을 이 영화를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100% 반영이 된 이런 스타일을
‘음악적이지 않은 영화 음악’이라고 직접 정의 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티토리(Titori)'라는 제목이 붙은
휘파람 멜로디의 이 제 1 주제곡이 영화 못지않게 무척이나
유명하게 된다.
그러나, 보이는 영상에 비해 들리는 음악(OS)이 너무 과장되어
있는 점, 즉, 별로 중요치 않은 장면에서도 거창하게 코러스까지
동원이 된 음악(OS)을 수시로 등장시킨 점 등은 때론, 신선함보단
촌스러움과 어색함을 더 느끼게 한 그런 단점들도 없지는 않았다.
[이들의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의 리뷰 에서]





한 편, 워낙 이 ‘티토리’가 크게 히트해서 그런지,
모리꼬네가 심혈을 기우려 만들었다는 애절한 트럼펫 선율의
오프닝 주제곡(Theme)은 매우 훌륭한 연주로서 영화의 첫 장면을
포함하여 복수를 하러 나타났을 때 등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었건만,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을 하진 못하였었다.
그리고 시리즈 2편, ‘석양의 건 맨(속-황야의 무법자)’
주제곡은 이 일편의 '티토리(Titori)'와 매우 비슷한 분위기로
연출하였는데, 역시 휘파람과 전기 기타, 유태인 하프 그리고
코러스 등이 비슷하게 동원 되면서 다시 또 큰 히트를 하였다.







1964년에 유럽에서의 이 영화의 대 성공으로 세르지오 레오네는
계속해서 비슷한 스타일의 (‘무법자 또는 달러 시리즈’ 삼부작 포함)
마카로니 웨스턴을 더욱 더 신을 내어 만들게 되고,
또 세르지오 코르부치를 포함한 수많은 이태리 서부극의 감독들
중에서도 이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로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1965년에는 우리에게 ‘(속) 황야의 무법자’로 더 잘 알려진
‘석양의 건 맨(Per Qualche Dollaro in Piu (For a Few Dollars More)’
그리고 1966년에는
‘Il Buono, il Brutto, il Cattivo (석양의 무법자/석양에 돌아오다)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 좋은 놈, 나쁜 놈, 그리고 추한 놈)‘을
계속 발표하면서
(스페인에서 만든 속칭 ‘무법자 삼부작’ 또는 ‘달러 삼부작‘은 일단 마감),
이후의 약 10년 동안 이태리 영화계에 마카로니 웨스턴 전성시대를
직접 열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그의 성공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린 추후에
알게 되지만, 그의 평생의 꿈의 프로젝트(Dream Project)였다는
‘원스 어펀 어 타임 인 어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끝으로 (심장 질환으로) 아쉽게도 1989년에 타계를 하였다.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한 또 다른 대작 영화 제작의 꿈을 미처
이루지 못한 채....
(또 다른 미완성 프로젝트 명: ‘Once Upon A Time In Russia’)



이 영화들을 보고나면 명작 이라던 가 또는 고급영화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하지만 할리우드가 아닌 변방의 이태리(스페인)에서 형편없는
저 예산(당시 돈 20만 달러)으로, 오락 영화로서의 이만한 성공을
가져올만한 사람도
세르지오 레오네 와 엔니오 모리꼬네 콤비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유러피언 서부극은 물론이고 유러피언 인디펜던트
영화의 기초를 닦았던 대표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이 영화를
교두보로 하여 이 두 사람은 전 세계적인 감독과 영화음악가로
성장을 하였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동시에 ‘윈-윈(Win – Win)‘
한 결과를 가져왔고
또, 이들의 용감한 개척과 개혁 정신이야말로 전 세계 영화계에
얼마나 크나 큰 발전을 그 동안에 이루었었나 하는 점을
다시 한 번 더 실감하게 된다.
그나저나 잘 되었건 잘못 되었건 간에 할리우드에서 이태리로
건너갔었던 서부극 (웨스턴)이라는 장르의 영화들이 (물론 몇 몇
작품이 근래에도 더 있긴 하지만.....) 21세기에는 그 맥이 거의
끊긴 게 아닌가 싶어 새삼스럽게 아쉬운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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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ed. May.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