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 / The Godfather 음악적 리뷰 + 동영상 모음
1972년/ 감독: Francis Ford Coppola/ 주연: Marlon Brando + Al Pacino 외
음악: Nino Rota + Carmine Coppola/ 175분
‘오메르타 (오멜타-Omerta)' 라는
일반인들은 잘 사용하지 않은 단어가 있다.
영한사전에는 말하지 않는다는 약속, 경찰에서의 비협조 또는
범죄의 은폐 등으로 나와 있다.
그래서 마피아 같은 범죄조직에서의 침묵의 서약 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다들 생각하게 마련인데, 그러나 원래 이 단어는
마피아의 원산지인 시실리 섬에서도 마찬가지이었지만,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던 곳에서의 독립 운동 같은
애국 애족적인 투쟁을 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규율)으로서
그 유래가 그리 나쁘지 않은 의미로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몇 백년간 이어져오던 이 오메르타의 전통을 어긴
자들에게는 당연히 죽음이라는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었는데,
결국 이런 전통이 마피아라는 범죄조직으로도 그대로 계승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원작소설의 저자인
마리오 푸조 (푸쪼- Mario Puzo, 1920-1999, 미국 뉴욕)는
참으로 용감하였다.
그가 유작으로 발표하였던 작품의 제목 (2000년7월 처음 출판)
이기도 한 이 오메르타의 서약을 어긴 자로서 오해를 받아
자신이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던 일이
바로 1963년 3월의 이 원작소설의 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옥의 주방(Hell's Kitchen)‘으로 불리우던
뉴욕 맨해튼, 웨스트 사이드의 빈민가에서
나폴리 출신의 이민 2세로 태어난 이태리계 미국인(Italiano
American), 이 마리오 푸조의 경력 중에는 그 어느 시점
에서도 마피아와 연관이 되었던 적은 (절대로) 없었다고 한다.
순전히 오랫동안 꾸준히 모아왔던 자료들과 통찰력 내지
상상력으로만 이 작품을 썼다고 몇 번씩이나 인터뷰를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려진
돈 비토 꼴레오네(Don Vito Corleone)의 가족 이야기는
실존 인물들이라는 끝이 없는 루머를 만들어 내었고,
푸조 자신도 한때는 마피아조직원이었다는 생사람 잡는
소리 까지 들어야만 하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대부와 그 밖의 작품들’이란 글 등을
통해 꼴레오네의(영감을 준) 모델은 바로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어처구니없는 고백까지 하기도 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도망간 남편을 평생 원망하며 7자녀를 억척같이
잘 키워낸 매우 남성적이고 무자비한 면이 있는 활동적인 여성
으로서 이 엄격한 어머니가 안계셨다면 실제로 그 자신도
어쩌면 나쁜 길로 빠졌을지도 모른다고 회고하였었다.)
어쨌든 그는 1955년에 첫 번째 소설, ‘The Dark Arena‘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8년 만에 이 베스트셀러(뉴욕 타임스
차트에 67주나 상위 랭크)로 단숨에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는 영화 제작자,
앨버트 루디(Albert S Ruddy. 1930, 캐나다)의 제안을 받아들여
1970년 초에 이 영화의 각본, 각색 작업에도 참여하게 된다.
범죄 조직과 또 그 조직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수많은 갱스터 영화들
중에서 이 작품만큼이나 그 주인공들을 미화한 작품이 또 있을까?
이 작품의 감독직을 고사하였던 할리우드의 수많은 거장들이
마피아의 보복보다도 더 두려워하였다는 점이 바로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이 (조직)미화 작업이었다고도 하지만,
그러나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수많은 대중들에게 이 범죄 영화만큼
엄청난 사랑을 받은 작품도 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전 세계를 한동안 이 대부 중독증에 빠트린 가장 큰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피는 물보다 진한다는 가족애를 중심축으로 하여
한 가족의 초상화를 그리듯, 가족중심의 따뜻한 ‘휴머니티’로 작품
전체를 포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유별나게
많이 나온다.)
물론 그 외에도 가난뱅이 이민자의 성공담인 아메리칸 드림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들도 많지만, 어쨌든 대가족 중심의 우리나라 사람들
못지않은 이 이태리인들의 끈끈한 가족사랑은 너무나도 각별하고
생생하게 전달이 되어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품의 시작도 먼 사돈의 팔촌 친척들까지 다 만날 수가
있는 결혼식이라는 축제의 분위기로부터 시작이 된다.
1945년 8월의 마지막 토요일. 롱 아일랜드에 위치한 한 호화주택.
수많은 하객들이 모여 춤을 추고 노래들을 한다.
'돈(Don)'이라는 경의를 표하는 호칭과 함께
‘대부(代父.Godfather)’ 라는 친근한 호칭의
비토 꼴레오네(Vito Corleone-Marlon Brando,1924-2004,오마하)의
딸, 카니 (Connie- Talia Shire,1946, 뉴욕/ 코폴라 감독의 여동생)의
결혼식 피로연은 마침 막 끝난 전쟁의 승리분위기 그대로, 그래서
하루 종일 계속될 예정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일에 줄곧 관여를 해온 성질 급한 황소 같은
장남, 소니 (Sonny-Santino-James Cann, 1940, 미국 뉴욕)는
이 와중에도 아내 몰래 여동생 들러리와 즉석관계를 가지고, 소극적인
성격의 둘째, 프레도 (Fredo-John Cazale, 1935-1978, 미국 보스톤)는
손님들 접대에 바쁘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사내답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줄곧 들어왔던
셋째, 마이클(Michael-Al Pacino, 1940, 미국 뉴욕)은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전쟁 중에 해병대에 자원입대를 한 후,
지금은 군복을 입은 채 구석진 자리에 앉아 여자 친구,
케이(Kay Adams-Diane Keaton, 1946, 미국 LA)와
(마치 딴 식구처럼)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결코 실망시킨 적이 없다는
비토 꼴레오네는 피로연 도중에도 집무실에서 온갖 부탁을 하러온
하객들을 일일이 다 접견을 한 후,
‘컨시예리(Consigliere-조직의 브레인)’이자 양아들인 변호사,
탐 (Tom Hagen-Robert Duvall, 1931, 미국 CA)에게 후속 일들을
지시한다.
여기엔 인기가수인 자니(Johnny Fontain-Al Martino 1927, 미국
필라델피아)의 할리우드의 영화 출연 건도 포함이 된다.
1946년 초, 마약거래 일로 협조를 부탁 하였다가 거절을 당한
뉴욕 5대 패밀리의 하나인 타타글리아(Tattaglia)패밀리의 일원,
쏠로쪼는 저녁을 먹고 길에서 과일을 사던 대부,
비토 꼴레오네를 저격하면서 패밀리 간에 선전포고를 하자,
그동안 아버지 일에는 절대로 관여하지 않았던 막내, 마이클이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하고 피신 차, 잠시 시실리로 떠나게 된다.
한편, 퇴원을 한 비토 꼴레오네는 상원의원 같은 아들이 되길
바라면서, 각별한 사랑을 주었던 마이클의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실망을 한다.
연이어 큰아들인 소니마저 조직 간의 복수극에 희생이 되어 죽자,
5대 패밀리의 회의를 소집을 하고 막내아들의 안전 귀국을 담보로
휴전을 제의한다.
시실리에 피신해있으면서 조상들의 고향 마을인
꼴레오네(Corleone)를 찾아가던 중에 첫눈에 반한
아폴로니아 (Apollonia-Simonetta Stefanelli, 1954, 이태리)와
현지에서 결혼을 하고 즐거운 신혼생활을 하던 마이클은
복수극의 와중에서 아폴로니아를 잃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옛 애인인 케이와 결혼을 해 아이도 갖게 되고,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노쇠해가는 아버지를 대신해,
패밀리의 사업에도 본격적 관여를 하면서, 꼴레오네 패밀리의
실질적인 보스가 되어간다.
또한, 합법적인 사업을 추진하던 마이클은 라스 베이거스의
카지노 사업에 진출키로 결정을 하고 일을 추진하던 중,
1954년에 62세인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을 하자,
그동안 미루어왔던 적대적인 타 조직에 대한 복수와 숙청을
대대적으로 감행을 한다.
바로, 누님의 딸의 세례식이 뉴욕의 생 패트릭 성당에서 열리고
자신도 이제 그녀의 대부가 되는 순간, 신부님이 하는 질문,
“사탄을 부인 합니까? (Do You Renounce Satan?)” 에
“예 (I Do Renounce)”라고 태연하게 대답을 하면서도 마치
그가 부인한 사탄과도 같이 무자비하고 잔혹한 살인극들을
같은 시간에 벌리는 것이다.
거기다, 소니형의 죽음에 관여하였던 매형까지도 처형하면서,
(속편에서는 친형까지 죽이기도 하지만......)
냉혹하지만 권위가 있는 보스로 거듭나게 되고,
곧이어 찾아오는 방문객들로부터 ‘돈 꼴레오네’ 라는
(죽은) 아버지에게 하던 존칭을 똑같이 듣게 된다.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러브스토리(Love Story. 1970)’ 한편
으로 일약 업계 1위로 도약하였던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대주주,
걸프 앤 웨스턴(Gulf & Western)사는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이전서부터 이미 테러위협에 시달리는 등 수많은 곤욕들을 치렀다.
오랫동안 성역시 되어오면서 그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하였던
마피아조직을 주제로 죽음을 불사하고 쓴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업도 짐작하듯이 그리 쉽게 일들이 풀려나가진 않았다.
영화사측에서 최우선적으로 접촉하였던
프랭클린 섀프너(Franklin Schaffner)나 아서 펜(Arthur Penn)
같은 감독 후보들과 주연급 배우들이 대부분 고사하는 바람에,
당시로서는 좀 젊기는 하지만, ‘패튼 대전차군단 (Patton. 1970)’
으로 그동안에 미국 아카데미상도 공동수상을 하는 등,
특히 각본, 각색을 잘하기로 소문이 나 있던
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1939, 미시건)가
용감하게 총대를 메게 된다.
하지만 코폴라가 캐스팅을 했던 말론 브랜도나 또 당시 신인이던
알 파치노를 영화사 사장이 결사반대를 하면서 시작된 갈등들은
촬영 내내 그에게 중도 퇴출(해고)을 걱정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알리 맥그로우의 남편이자 파라마운트의 유명한
제작자, 밥 에번스(Robert Evans)가 중재를 많이 하였었다고
하는데, 코폴라, 브랜도, 파치노, 이 세 사람이 없는 ‘대부’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참 어이가 없다.]
특히, 영화에도 직접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아기였던 딸
(세례 장면-소피아 코폴라 출연)까지 자연스럽게 참여시킬
정도로 평소에도 무척 가족적이라는 이 코폴라 감독의
“가족 중심의 사상“과 끝까지 유지하려고 애 썼다는 ”휴머니티“
덕분에 그 잔혹한 장면들까지도 미화된 그 대단한 업적을 생각하면,
(몇 번씩 촬영이 중단되는) 악전고투 끝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생애 최고의 작품을 안겨주고, 또 코폴라 자신도 일약 거물로 신분
상승을 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래 사진 중간)
성격이 괴팍스럽기로 잘 알려졌던 말론 브랜도(Marlon Brando)는
이 영화로 받게 된 1973년도 제45회 미국아카데미 주연상을
수상 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워터 프론트(On The Waterfront. 1954)‘ 이후의 이 두 번째 상에
걸 맞는 참으로 특별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그가 없이도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불독같이 늘어진 얼굴 볼 살 분장과 죽는 장면에서 오렌지를
이용하는 아이디어 등을 수없이 자신이 직접 제공하면서 그로서도
코폴라와 찰떡궁합을 보여주며 생애 최고의 작품을 남긴 셈이다.
또 무엇보다도 강렬한 눈빛으로 우리들 곁에 다가왔던 알 파치노는
이어 제작이 된 시리즈의 속편에서도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면서
캐스팅 때의 설움을 앙갚음 하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개봉이 되고나서 아주 곤경에 빠진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바로 다름 아닌 가수 겸 배우,
후랭크 시내트라(Frank Sinatra. 1915-1998, 미국 뉴욕)였다.
가수, 알 마티노(Al Martino.1927, 미국 필라델피아)가 직접
출연을 하면서 그 역할을 한 자니 폰테인이 실제론 시내트라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동안 마피아 덕분에 연예계에서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다는 비난은 그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었으며, 여론도
아니 땐 굴뚝의 연기냐는 식으로 우호적이지 안았었다고 한다.
미화 작업이라는 별도의 노력 없이도 매우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연출이 된 장면중의 하나인 (초반부) 결혼식 피로연 도중에 부녀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하게 들려오던 월츠 풍의
음악은 이 영화를 더욱 더 낭만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1972년 1월에 로마에서 코폴라 감독과 충분한 의견을 교환한 후에
완성이 된 니노 로타 (Nino Rota. 1911-1979, 이태리 밀라노)의
이 테마곡이 바로 이 영화 전체의 주제곡(Main Theme)이다.
‘The Godfather Waltz’, ‘The Godfather Finale’등의
부제를 달아 여러 스타일로 변주를 한 이 대단한 메인 테마곡은
이후 계속되는 시리즈 전체 영화음악의 큰 기둥이 된다.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1920-1993, 이태리) 감독과는
두말을 할 필요가 없는 영원한 짝꿍,
니노 로타는 193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노련하고 오랜 경력으로
이 곡 외에도 마이클이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찾아갈 때에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던
‘마이클의 테마(Michael‘s Theme)(The Halls Of Fear)’를
비롯하여 여러 개의 테마 곡들을 작곡하였지만,
그러나 이 영화가 개봉이 되고 나서 마치 이 영화를 대표하는
주제곡같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음악은 바로 다름 아닌
사랑의 테마( Love Theme) 곡이었다.
1950년대부터 영화음악을 팝송화하기로 유명한 앤디 윌리엄스(Andy
Williams)가 ‘Speak Softly Love’ 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러 더욱
유명해진 이 영화의 사랑의 테마( Love Theme) 곡 은
영화가 절반이 진행될 때까지도 전혀 들리지 않다가 (위의 동영상),
마이클이 시실리에서 아폴로니아를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반복되는데,
OST 앨범에는 ‘아폴로니아(Apollonia)’ 라는 부제로도 수록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지휘하던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자리에 자주
앉아본 경험이 있었다는 코폴라 감독은
작곡가로서도 나중에 미국 아카데미상(1975년)을 수상하는 아버지,
카마인 코폴라(Carmine Coppola. 1910-1991, 미국 뉴욕) 에게도
처음부터 전체 OS를 만들 기회를 드렸었다고 하는데,
마음에 드는 곡들을 발견하지 못한 코폴라 감독은 공과 사를
분명히 하면서, 아버지 대신 이태리의 니노 로타를 찾게 되었고,
대신 아버지의 작품들은 결혼식 피로연 시퀀스에서만 일부
사용을 하였다.
(그러나 속편에서는 플룻 신동으로서의 아버지의 어린 시절도
실제로 보여준다.)
그리고 배우로서 출연을 한 유일한 작품인 이 영화에서 역시
인기가수로 등장을 한 알 마티노(Al Martino)가 피로연에서
부른 ‘한 마음(I Have But One Heart)’ 이란 곡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삽입곡들인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Bing Crosby)',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Mona Lisa‘ ,
’Manhattan Serenade(Tommy Dorsey 와 His Orchestra)' 등과는
달리 이 한 장면만을 위해 특별히 선곡이 되었던 복고조풍의
매우 아름다운 노래이다.
그리고 마이클의 조카가 세례를 받는 순간,
또 다른 곳의 끔찍한 살인의 장면들과 함께 들려 오던
바흐(J. S. Bach)의 ‘Passacaglia And Fugue In C Minor’는
정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게 다가오는 것이 참으로
분위기에 어울리는 훌륭한 선곡이 아닐 수 없다.
* OST 앨범 수록곡 리스트:
01. Main title (the godfather waltz) (위의 본문에)
02. I have but one heart (위의 본문에)
03. The pickup
04. Connie's wedding
05. The halls of fear
06. Sicilian pastorale
07. Love theme from the godfather (위의 본문에)
08. The godfather waltz
09. Apollonia (위의 본문에)
10. The new godfather
11. The baptism
12. The godfather finale
* 관련 동영상모음:
Jay. 192번째 영화리뷰. revised. Feb. 2018.
1972년/ 감독: Francis Ford Coppola/ 주연: Marlon Brando + Al Pacino 외
음악: Nino Rota + Carmine Coppola/ 175분
‘오메르타 (오멜타-Omerta)' 라는
일반인들은 잘 사용하지 않은 단어가 있다.
영한사전에는 말하지 않는다는 약속, 경찰에서의 비협조 또는
범죄의 은폐 등으로 나와 있다.
그래서 마피아 같은 범죄조직에서의 침묵의 서약 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다들 생각하게 마련인데, 그러나 원래 이 단어는
마피아의 원산지인 시실리 섬에서도 마찬가지이었지만,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던 곳에서의 독립 운동 같은
애국 애족적인 투쟁을 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규율)으로서
그 유래가 그리 나쁘지 않은 의미로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몇 백년간 이어져오던 이 오메르타의 전통을 어긴
자들에게는 당연히 죽음이라는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었는데,
결국 이런 전통이 마피아라는 범죄조직으로도 그대로 계승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원작소설의 저자인
마리오 푸조 (푸쪼- Mario Puzo, 1920-1999, 미국 뉴욕)는
참으로 용감하였다.
그가 유작으로 발표하였던 작품의 제목 (2000년7월 처음 출판)
이기도 한 이 오메르타의 서약을 어긴 자로서 오해를 받아
자신이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던 일이
바로 1963년 3월의 이 원작소설의 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옥의 주방(Hell's Kitchen)‘으로 불리우던
뉴욕 맨해튼, 웨스트 사이드의 빈민가에서
나폴리 출신의 이민 2세로 태어난 이태리계 미국인(Italiano
American), 이 마리오 푸조의 경력 중에는 그 어느 시점
에서도 마피아와 연관이 되었던 적은 (절대로) 없었다고 한다.
순전히 오랫동안 꾸준히 모아왔던 자료들과 통찰력 내지
상상력으로만 이 작품을 썼다고 몇 번씩이나 인터뷰를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려진
돈 비토 꼴레오네(Don Vito Corleone)의 가족 이야기는
실존 인물들이라는 끝이 없는 루머를 만들어 내었고,
푸조 자신도 한때는 마피아조직원이었다는 생사람 잡는
소리 까지 들어야만 하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대부와 그 밖의 작품들’이란 글 등을
통해 꼴레오네의(영감을 준) 모델은 바로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어처구니없는 고백까지 하기도 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도망간 남편을 평생 원망하며 7자녀를 억척같이
잘 키워낸 매우 남성적이고 무자비한 면이 있는 활동적인 여성
으로서 이 엄격한 어머니가 안계셨다면 실제로 그 자신도
어쩌면 나쁜 길로 빠졌을지도 모른다고 회고하였었다.)
어쨌든 그는 1955년에 첫 번째 소설, ‘The Dark Arena‘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8년 만에 이 베스트셀러(뉴욕 타임스
차트에 67주나 상위 랭크)로 단숨에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는 영화 제작자,
앨버트 루디(Albert S Ruddy. 1930, 캐나다)의 제안을 받아들여
1970년 초에 이 영화의 각본, 각색 작업에도 참여하게 된다.
범죄 조직과 또 그 조직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수많은 갱스터 영화들
중에서 이 작품만큼이나 그 주인공들을 미화한 작품이 또 있을까?
이 작품의 감독직을 고사하였던 할리우드의 수많은 거장들이
마피아의 보복보다도 더 두려워하였다는 점이 바로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이 (조직)미화 작업이었다고도 하지만,
그러나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수많은 대중들에게 이 범죄 영화만큼
엄청난 사랑을 받은 작품도 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전 세계를 한동안 이 대부 중독증에 빠트린 가장 큰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피는 물보다 진한다는 가족애를 중심축으로 하여
한 가족의 초상화를 그리듯, 가족중심의 따뜻한 ‘휴머니티’로 작품
전체를 포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유별나게
많이 나온다.)
물론 그 외에도 가난뱅이 이민자의 성공담인 아메리칸 드림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들도 많지만, 어쨌든 대가족 중심의 우리나라 사람들
못지않은 이 이태리인들의 끈끈한 가족사랑은 너무나도 각별하고
생생하게 전달이 되어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품의 시작도 먼 사돈의 팔촌 친척들까지 다 만날 수가
있는 결혼식이라는 축제의 분위기로부터 시작이 된다.
1945년 8월의 마지막 토요일. 롱 아일랜드에 위치한 한 호화주택.
수많은 하객들이 모여 춤을 추고 노래들을 한다.
'돈(Don)'이라는 경의를 표하는 호칭과 함께
‘대부(代父.Godfather)’ 라는 친근한 호칭의
비토 꼴레오네(Vito Corleone-Marlon Brando,1924-2004,오마하)의
딸, 카니 (Connie- Talia Shire,1946, 뉴욕/ 코폴라 감독의 여동생)의
결혼식 피로연은 마침 막 끝난 전쟁의 승리분위기 그대로, 그래서
하루 종일 계속될 예정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일에 줄곧 관여를 해온 성질 급한 황소 같은
장남, 소니 (Sonny-Santino-James Cann, 1940, 미국 뉴욕)는
이 와중에도 아내 몰래 여동생 들러리와 즉석관계를 가지고, 소극적인
성격의 둘째, 프레도 (Fredo-John Cazale, 1935-1978, 미국 보스톤)는
손님들 접대에 바쁘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사내답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줄곧 들어왔던
셋째, 마이클(Michael-Al Pacino, 1940, 미국 뉴욕)은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전쟁 중에 해병대에 자원입대를 한 후,
지금은 군복을 입은 채 구석진 자리에 앉아 여자 친구,
케이(Kay Adams-Diane Keaton, 1946, 미국 LA)와
(마치 딴 식구처럼)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결코 실망시킨 적이 없다는
비토 꼴레오네는 피로연 도중에도 집무실에서 온갖 부탁을 하러온
하객들을 일일이 다 접견을 한 후,
‘컨시예리(Consigliere-조직의 브레인)’이자 양아들인 변호사,
탐 (Tom Hagen-Robert Duvall, 1931, 미국 CA)에게 후속 일들을
지시한다.
여기엔 인기가수인 자니(Johnny Fontain-Al Martino 1927, 미국
필라델피아)의 할리우드의 영화 출연 건도 포함이 된다.
1946년 초, 마약거래 일로 협조를 부탁 하였다가 거절을 당한
뉴욕 5대 패밀리의 하나인 타타글리아(Tattaglia)패밀리의 일원,
쏠로쪼는 저녁을 먹고 길에서 과일을 사던 대부,
비토 꼴레오네를 저격하면서 패밀리 간에 선전포고를 하자,
그동안 아버지 일에는 절대로 관여하지 않았던 막내, 마이클이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하고 피신 차, 잠시 시실리로 떠나게 된다.
한편, 퇴원을 한 비토 꼴레오네는 상원의원 같은 아들이 되길
바라면서, 각별한 사랑을 주었던 마이클의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실망을 한다.
연이어 큰아들인 소니마저 조직 간의 복수극에 희생이 되어 죽자,
5대 패밀리의 회의를 소집을 하고 막내아들의 안전 귀국을 담보로
휴전을 제의한다.
시실리에 피신해있으면서 조상들의 고향 마을인
꼴레오네(Corleone)를 찾아가던 중에 첫눈에 반한
아폴로니아 (Apollonia-Simonetta Stefanelli, 1954, 이태리)와
현지에서 결혼을 하고 즐거운 신혼생활을 하던 마이클은
복수극의 와중에서 아폴로니아를 잃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옛 애인인 케이와 결혼을 해 아이도 갖게 되고,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노쇠해가는 아버지를 대신해,
패밀리의 사업에도 본격적 관여를 하면서, 꼴레오네 패밀리의
실질적인 보스가 되어간다.
또한, 합법적인 사업을 추진하던 마이클은 라스 베이거스의
카지노 사업에 진출키로 결정을 하고 일을 추진하던 중,
1954년에 62세인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을 하자,
그동안 미루어왔던 적대적인 타 조직에 대한 복수와 숙청을
대대적으로 감행을 한다.
바로, 누님의 딸의 세례식이 뉴욕의 생 패트릭 성당에서 열리고
자신도 이제 그녀의 대부가 되는 순간, 신부님이 하는 질문,
“사탄을 부인 합니까? (Do You Renounce Satan?)” 에
“예 (I Do Renounce)”라고 태연하게 대답을 하면서도 마치
그가 부인한 사탄과도 같이 무자비하고 잔혹한 살인극들을
같은 시간에 벌리는 것이다.
거기다, 소니형의 죽음에 관여하였던 매형까지도 처형하면서,
(속편에서는 친형까지 죽이기도 하지만......)
냉혹하지만 권위가 있는 보스로 거듭나게 되고,
곧이어 찾아오는 방문객들로부터 ‘돈 꼴레오네’ 라는
(죽은) 아버지에게 하던 존칭을 똑같이 듣게 된다.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러브스토리(Love Story. 1970)’ 한편
으로 일약 업계 1위로 도약하였던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대주주,
걸프 앤 웨스턴(Gulf & Western)사는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이전서부터 이미 테러위협에 시달리는 등 수많은 곤욕들을 치렀다.
오랫동안 성역시 되어오면서 그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하였던
마피아조직을 주제로 죽음을 불사하고 쓴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업도 짐작하듯이 그리 쉽게 일들이 풀려나가진 않았다.
영화사측에서 최우선적으로 접촉하였던
프랭클린 섀프너(Franklin Schaffner)나 아서 펜(Arthur Penn)
같은 감독 후보들과 주연급 배우들이 대부분 고사하는 바람에,
당시로서는 좀 젊기는 하지만, ‘패튼 대전차군단 (Patton. 1970)’
으로 그동안에 미국 아카데미상도 공동수상을 하는 등,
특히 각본, 각색을 잘하기로 소문이 나 있던
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1939, 미시건)가
용감하게 총대를 메게 된다.
하지만 코폴라가 캐스팅을 했던 말론 브랜도나 또 당시 신인이던
알 파치노를 영화사 사장이 결사반대를 하면서 시작된 갈등들은
촬영 내내 그에게 중도 퇴출(해고)을 걱정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알리 맥그로우의 남편이자 파라마운트의 유명한
제작자, 밥 에번스(Robert Evans)가 중재를 많이 하였었다고
하는데, 코폴라, 브랜도, 파치노, 이 세 사람이 없는 ‘대부’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참 어이가 없다.]
특히, 영화에도 직접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아기였던 딸
(세례 장면-소피아 코폴라 출연)까지 자연스럽게 참여시킬
정도로 평소에도 무척 가족적이라는 이 코폴라 감독의
“가족 중심의 사상“과 끝까지 유지하려고 애 썼다는 ”휴머니티“
덕분에 그 잔혹한 장면들까지도 미화된 그 대단한 업적을 생각하면,
(몇 번씩 촬영이 중단되는) 악전고투 끝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생애 최고의 작품을 안겨주고, 또 코폴라 자신도 일약 거물로 신분
상승을 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래 사진 중간)
성격이 괴팍스럽기로 잘 알려졌던 말론 브랜도(Marlon Brando)는
이 영화로 받게 된 1973년도 제45회 미국아카데미 주연상을
수상 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워터 프론트(On The Waterfront. 1954)‘ 이후의 이 두 번째 상에
걸 맞는 참으로 특별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그가 없이도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불독같이 늘어진 얼굴 볼 살 분장과 죽는 장면에서 오렌지를
이용하는 아이디어 등을 수없이 자신이 직접 제공하면서 그로서도
코폴라와 찰떡궁합을 보여주며 생애 최고의 작품을 남긴 셈이다.
또 무엇보다도 강렬한 눈빛으로 우리들 곁에 다가왔던 알 파치노는
이어 제작이 된 시리즈의 속편에서도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면서
캐스팅 때의 설움을 앙갚음 하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개봉이 되고나서 아주 곤경에 빠진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바로 다름 아닌 가수 겸 배우,
후랭크 시내트라(Frank Sinatra. 1915-1998, 미국 뉴욕)였다.
가수, 알 마티노(Al Martino.1927, 미국 필라델피아)가 직접
출연을 하면서 그 역할을 한 자니 폰테인이 실제론 시내트라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동안 마피아 덕분에 연예계에서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다는 비난은 그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었으며, 여론도
아니 땐 굴뚝의 연기냐는 식으로 우호적이지 안았었다고 한다.
미화 작업이라는 별도의 노력 없이도 매우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연출이 된 장면중의 하나인 (초반부) 결혼식 피로연 도중에 부녀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하게 들려오던 월츠 풍의
음악은 이 영화를 더욱 더 낭만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1972년 1월에 로마에서 코폴라 감독과 충분한 의견을 교환한 후에
완성이 된 니노 로타 (Nino Rota. 1911-1979, 이태리 밀라노)의
이 테마곡이 바로 이 영화 전체의 주제곡(Main Theme)이다.
‘The Godfather Waltz’, ‘The Godfather Finale’등의
부제를 달아 여러 스타일로 변주를 한 이 대단한 메인 테마곡은
이후 계속되는 시리즈 전체 영화음악의 큰 기둥이 된다.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1920-1993, 이태리) 감독과는
두말을 할 필요가 없는 영원한 짝꿍,
니노 로타는 193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노련하고 오랜 경력으로
이 곡 외에도 마이클이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찾아갈 때에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던
‘마이클의 테마(Michael‘s Theme)(The Halls Of Fear)’를
비롯하여 여러 개의 테마 곡들을 작곡하였지만,
그러나 이 영화가 개봉이 되고 나서 마치 이 영화를 대표하는
주제곡같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음악은 바로 다름 아닌
사랑의 테마( Love Theme) 곡이었다.
1950년대부터 영화음악을 팝송화하기로 유명한 앤디 윌리엄스(Andy
Williams)가 ‘Speak Softly Love’ 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러 더욱
유명해진 이 영화의 사랑의 테마( Love Theme) 곡 은
영화가 절반이 진행될 때까지도 전혀 들리지 않다가 (위의 동영상),
마이클이 시실리에서 아폴로니아를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반복되는데,
OST 앨범에는 ‘아폴로니아(Apollonia)’ 라는 부제로도 수록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지휘하던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자리에 자주
앉아본 경험이 있었다는 코폴라 감독은
작곡가로서도 나중에 미국 아카데미상(1975년)을 수상하는 아버지,
카마인 코폴라(Carmine Coppola. 1910-1991, 미국 뉴욕) 에게도
처음부터 전체 OS를 만들 기회를 드렸었다고 하는데,
마음에 드는 곡들을 발견하지 못한 코폴라 감독은 공과 사를
분명히 하면서, 아버지 대신 이태리의 니노 로타를 찾게 되었고,
대신 아버지의 작품들은 결혼식 피로연 시퀀스에서만 일부
사용을 하였다.
(그러나 속편에서는 플룻 신동으로서의 아버지의 어린 시절도
실제로 보여준다.)
그리고 배우로서 출연을 한 유일한 작품인 이 영화에서 역시
인기가수로 등장을 한 알 마티노(Al Martino)가 피로연에서
부른 ‘한 마음(I Have But One Heart)’ 이란 곡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삽입곡들인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Bing Crosby)',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Mona Lisa‘ ,
’Manhattan Serenade(Tommy Dorsey 와 His Orchestra)' 등과는
달리 이 한 장면만을 위해 특별히 선곡이 되었던 복고조풍의
매우 아름다운 노래이다.
그리고 마이클의 조카가 세례를 받는 순간,
또 다른 곳의 끔찍한 살인의 장면들과 함께 들려 오던
바흐(J. S. Bach)의 ‘Passacaglia And Fugue In C Minor’는
정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게 다가오는 것이 참으로
분위기에 어울리는 훌륭한 선곡이 아닐 수 없다.
* OST 앨범 수록곡 리스트:
01. Main title (the godfather waltz) (위의 본문에)
02. I have but one heart (위의 본문에)
03. The pickup
04. Connie's wedding
05. The halls of fear
06. Sicilian pastorale
07. Love theme from the godfather (위의 본문에)
08. The godfather waltz
09. Apollonia (위의 본문에)
10. The new godfather
11. The baptism
12. The godfather finale
* 관련 동영상모음:
Jay. 192번째 영화리뷰. revised. Feb.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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