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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이야기들-1990년대상

채플린 / Chaplin 리뷰(찰리 채플린의 일생과 발자취) + 동영상 모음

by 음악평론가김제건 2012. 1. 5.
채플린 / Chaplin 리뷰(찰리 채플린의 일생과 발자취) + 동영상 모음
1992년/제작 + 감독: Richard Attenborough /주연: Robert Downey Jr.
음악: John Barry/143분.



1891년 5월20일에 미국의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
키네토그래프(Kinetograph)와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를
최초로 전시를 하고, 1893년과 1894년에는 긴 필름에다
이미지를 연속촬영을 하는데 성공을 한다.
그리고 1895년 3월22일에 프랑스의 뤼미에르(Lumiere) 형제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를 통해 최초로 시연을 하고,
1896년4월, 에디슨에 의해 최초의 상업 영화가 상영이 되므로서
대중들에게 점점 알려지기 시작한 활동사진 (A Motion Picture).
이 새롭고 놀라운 기술의 문명과 문화가 19세기 말에 창조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최초의 월드 스타’는 단연,
찰리 채플린(Charles Spencer Chaplin) 이었다.
1889년 4월16일, 런던 이스트스트리트(East Street)에서 태어나고,
1977년 12월25일, 스위스의 베베(Vevey)에서 88세에 영면한
‘영화 역사의 전설‘.
그 어느 영화인도 범접할 수 없는 전설을 남긴 채플린의 발자취를
그가 1964년에 출간한 자서전, ’My Autobiography‘에 기초를 하여
영화화하였고, 채플린의 15주기였던, 1992년 크리스마스에 처음
개봉을 한 이 작품의 줄거리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1963년, 이 영화 속에서 유일한 가공인물인
미국인 작가, 조지 헤이든(George Haydon/Anthony Hopkins)
나이든 채플린은 자서전 원고를 마감키 위해 자주 회동을 하는데,
‘인류에게 즐거움을 준 것’이 생의 가장 큰 보람이었다는 찰리가
언제 어떻게 대중들에게 첫선을 보였는지를 먼저 찰리의 어머니를
회상함으로서 서두에 들려준다.
1894년, 영국의 알더쇼트(Aldershot),
몸이 아픈데도 무대에 섰다가 야유를 받는 가수인 어머니,
한나 채플린(Hannah Chaplin/Geraldine Chaplin, 1944, 미국)
대신하여 무대에 올라 노래를 시작한 5살의 조숙한 찰리. 그러다
결국 해고를 당한 홀어머니는 장갑 바느질로 세 식구 생계를
꾸려나가지만, 가난은 찰리를 죄 없이 소년원으로 가게 만들고,
아버지가 다른 외형(外兄), 시드니(Sydney Chaplin- Paul Ryes,
1963, 영국)
마저 선원이 되어 떠나 버린다.
1901년, 찰리가 세 살도 되기 전부터 떠돌이생활을 하던 찰리의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 한나 마저 정신병원에 입원을 한 이후,
10대초의 어린 찰리는 뮤직홀과 극장가를 전전하다 형, 시드니의
소개로 보드빌 극단의 후레드 카르노(Fred Karno-John Thaw)
단장
을 만난다(1903년/14세).
처음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얻게 된 이때부터 그는 스크린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자빠지고 넘어지는 주정뱅이 연기로
(슬랩스틱 코미디의 시조)
런던, 해크니 엠파이어(Hackney Empire)극장 등에서
급속도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같은 단원이자 무용수였던
16세의 헤티 켈리(Hetty Kelly/Moria Kelly)를 사랑하게 된 찰리.
시장 통의 거리음식점에서 장미 꽃 한 송이로 청혼을 해 보지만,
승낙을 받지 못하고, 이미 계획이 잡혀있던 미국 순회공연
(1910-1912)으로 인하여 그만 둘은 헤어지게 된다.
1913년 미국, 몬태나의 뷰트(Butte)에서 2차 미국순회 공연을 하던
찰리는 그렇지 않아도 활동사진에 매료되어 있던 참에 주급 150달러의
거금에 영화에 출연을 해달라는 (당시 ‘무성영화의 황제’라는 칭호를
받던) 맥 세닛(Mack Sennette-Dan Aykroyd)의 전보를 받고
즉시 캘리포니아의 키스톤(Keystone) 스튜디오로 달려간다.
그리고 칫솔모 같은 일자수염과 작은 더비(Derby)모자, 낡고 꽉
끼는 재킷, 늘어지고 헐렁한 배기(Baggy)바지, 낡고 큰 구두,
대나무 지팡이 등(비록 모방에서 시작이 되었지만)으로 자신이
직접 연출한 신원불명의 ‘떠돌이 방랑자(The Tramp)’ 캐릭터의
이미지는 1914년부터 그의 독특한 트레이드마크가 되면서,
일약 성공가도로 접어들게 된다.
(첫 출연 작품: ‘Making A Living’ - 1914년 2월)



한 해 20편의 영화에 겹치기출연을 하면서 성공을 거듭하던 찰리는
자신을 영화계로 불렀던 맥 세닛보다도 더 많은 주급 1,000달러를
받으며 감독으로도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첫 감독 작: Twenty Minutes Of Love, 1914)
그리고 외형, 시드니를 매니저로 불러오며 더욱 안정적인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주식회사(Stock Company)와 스튜디오(1918년)도
차리게 된다.
그리고 1919년에는 그가 ‘평생의 베스트 프렌드‘라고 서술한
더그 훼어뱅스(Douglas Fairbanks-Kevin Kline),
메리 픽포드(Mary Pickford-Maria Pitillo)등과 함께
영화사, U A(United Artists)를 설립하게 되고, 농지에서 막 개발이
시작되던 땅, 할리우드(Hollywood Land. 1920년 초)에 안주를 한다.
제1차 대전 당시, 시드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민국직원을
걷어차는 장면으로부터 현실 비평을 하면서 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논쟁을 유발시킨 찰리는 후에 FBI 국장이 되는 J. 에드거 후버
(J. Edgar Hoover-Kevin Dunn)를 종전기념일 파티에서 만나는데,
이날부터 시작된 반감은 결국 30년이 넘어가는 증오로 이어 진다.
한편, 더그 훼어뱅스의 스튜디오 파티에서 아역배우 출신의
16세의 밀드레드 해리스(Mildred Harris-Milla Jovovici)
만나면서, 1916년부터 약 2년간 계속되던 에드나 퍼바이언스(Edna
Purviance-Penelope Ann Miller)와의 로맨스를 끝내고,
1918년10월23일에 첫 결혼을 하게 된 찰리(29세)는
2년 후 그의 첫 장편인, ‘키드(The Kid, 1921)’를 (유타로 도망가)
편집을 하는 소동을 겪은 후에 결국은 (첫)이혼을 하게 된다.



정신병원에 있던 어머니를 미국으로 모셔와 캘리포니아 바닷가에
집을 마련해 드린 찰리는 향수에 젖어, 1921년 런던을 방문하게
되는데, 대중들로부터는 열렬한 환영을 받는 동시에(위의 사진),
술집에서는 빨갱이라는 야유를 듣게 되고, 또 그를 첫 고용하였던
카르노 단장에게서는 그의 진실한 첫사랑이었던 헤티 켈리가
삼년 전에 요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빠진다.
(그의 초기영화의 여주인공들은 모두 이 헤티 켈리의 영감으로
만들어졌다.)

미국에서 아주 영주를 하기로 작정한 찰리는
‘황금광 시대(The Gold Rush, 1925)’를 만들 무렵,
리타 그레이(Lita Grey-Deborah Moore)와 멕시코에서
두 번째 결혼을 하는데, 이 결혼 생활 역시 3년을 넘기지 못하고
1927년 8월에 이혼을 한다.
같은 해, 초기 유성영화의 첫 히트작인 ‘재즈 싱어(The Jazz
Singer,1927)’
가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였던 찰리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데, 그러나 무성영화의 장점
(세계인구의 90%가 비영어권이라는 그의 논리)만을 고집 하면서,
그는 ‘서커스(The Circus, 1928)'‘가로등(City Lights, 1931)'
꿋꿋하게 만들어 나간다.
1932년, 캘리포니아의 말리부 해안에서 아들들과 놀다가 만난
폴렛 고다드(Paulette Goddard-Diane Lane)와 동거를 시작한
찰리는 1936년 6월에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린다.(아래 사진)



대 공항이 야기한 대량실업사태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폴렛과 데이트 도중에 목격한 찰리는 그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모던 타임즈(Modern Times,1936)'를 만든다.
하지만 영화음악 작곡에도 몰두하면서, 제작에서부터 작곡까지
너무 많은 일거리는 결국 사랑하던 폴렛까지도 떠나가게 만든다.
(1942년6월 이혼-그가 유일하게 칭찬한 전 부인.)
1938년, 한 파티에서 같은 해에 4일차이로 태어난 히틀러와
닮았다는 농담으로부터 기획이 시작된 그의 첫 유성영화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 1940)'
유성영화 시대에도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떠돌이(The Tramp-이발사)'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그의
집념을 대중들에게 보여주긴 했으나, 독일이 아니라 미국을
비난한다는 후버 국장의 격노를 유발하고, 이후 FBI의 전담
요원이 찰리를 항상 감시를 하게 된다.
거기다 1941년에 만난 조앤 배리(Joan Barry-Nancy Travis)와
의 관계가 후버의 미끼가 되면서 친자확인 소송 스캔들에
휩싸이게 되는데, 혈액검사 결과, 결백함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받게 되는 유죄 판결은 그가 몇 십 년 걸려
쌓아올린 명성을 한 순간에 추락시키며 그를 좌절시킨다.
하지만, 구세주같이 나타난
유명한 극작가, 유진 오닐(Eugene O' Neil)의 딸,
우나 오닐(Oona O' Neil Chaplin-Moria Kelly)
18세의 나이인 1943년 6월에, 36살 연상의 찰리와 결혼을
하므로서 다시 찰리에게 크나큰 삶의 위안을 준다.



시끄러운 매카시 청문회의 난리 속에서 온가족이 총동원이
되어 만든 ‘라임라이트(Limelight, 1952)' 의 첫 발표 후,
우나의 제안으로 온 식구와 함께 런던 행 여객선에 오른
찰리는 곧이어 후버의 작품인 미국 추방 소식을 듣게 되면서
1952년부터 스위스에서의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1972년, 제44회 미국 아카데미 상의
특별상을 받기위해 LA에 다시 나타난 83세의 찰리.
오스카 집행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하고,
이어 찰리의 작품들 하이라이트가 스크린에 비쳐지는 동안
어둠 속에서 찰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래 사진-영화 끝-이어 주요 인물 후기가 이어짐)

찰리가 이 시대의 예술 형태인 영화사에 남긴 업적은
실로 대단하여, 배우, 작가, 감독, 제작자, 작곡가등으로서의
그의 예술적 양심은 W. C. 필즈의 말대로
‘위대한 발레 댄서’로도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유머는 생존감각을 강화하고 사람을 미치지 않게 한다.”고
찰리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 찰리는 ‘내 유일한
적은 시간’이라고 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은 찰리에게 있어 소중한 영원의 벗입니다.
이제 그 시간이 남긴 그의 위대한 작품들을 보시고,
향수에 젖어보시길 바랍니다.




“광대의 눈물을 본 자만이 진정 희극을 이해 할 수 있다” 라는
말이 있지만, 존 배리(John Barry, 1933, 영국)
채플린의 눈물(위의 사진)을 과연 보았을까?
일반적으로 ‘웃기는 희극인’으로만 대중들에게 각인이 된
채플린의 이미지를 음악적으로 너무나 슬프게 그려 내었다.
피아노가 아주 잔잔하고 천천히 리드해나가는
이 클래시컬한 주 멜로디를 듣다보면, 마치 채플린의 눈물을
옆에서 직접 보는듯한 느낌까지도 주는 이 메인 테마 곡(Main
Theme)은 슬픈 표정으로 화장을 지우는 채플린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오프닝 크레디츠서부터 여러 번 들을 수가 있는데,
존 배리의 대표작, 007 제임스본드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으며,
또 비교적 정통 클래식에 가까운 영화음악으로 손꼽히는
그의 ‘사랑의 은하수(Somewhere In Time,1980)',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1985)',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1990)' 등과도 비교하기가
힘든 매우 색다른 분위기의 여운을 남기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새삼 (이 OS의) 깊이가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배리는 채플린이 작곡을 한 수많은 영화 음악들 중에서
채플린의 대표작으로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1936)'
주제곡을 꼽은 듯, '스마일(Smile)' 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음악을 월츠 풍으로도 경쾌하게 편곡을 하여 이 작품의
오리지널 스코어(OS)에 자주 인용을 하였다.
(마지막 장면인 주요 인물들의 후기에서도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그리고 이곡은 이 영화의 주인공역을 맡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Downey Jr. 1965.미국)
직접 노래를 불러 이 영화의 OST앨범(맨 아래 수록곡 리스트
참조)에 수록을 했지만, 정작 영화에는 사용하지를 못하였다.



‘젊은 날의 처칠(Young Winston, 1972)'과 오스카상에서
무더기 수상을 한 대작, ’간디(Gandhi, 1982)'로 인해서
전기 영화를 잘 만들기로 소문이 난
리처드 어탠보로(Richard Attenborough,1923,영국)
채플린의 열렬한 팬의 입장에서 직접 기획, 제작을 하고
감독까지 하였는데, 200시간 분량의 촬영을 마치고,
4시간 정도로 일차 편집을 했었다는 이 작품에서
그가 맞춘 초점은 채플린이 65년간 영화계에 헌신하였던
공적인 (외부) 모습보다는 어디까지나 한 인간으로서의
채플린의 (전설에 가려진 알려지지 않았던) 사적이고
내부적인 실제 삶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그의 기획 의도를 오디션에서 주 경쟁자였던
짐 캐리(Jim Carrey)보다도 훨씬 압도적인 (마임-Mime)
실력으로 많은 스탭들의 인정을 받았고, 또 거의 일 년 동안
채플린의 연기만을 연구하면서 따라 하기를 반복 연습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Downey Jr. 1965. 미국)
잘 살려 주었다.
채플린의 딸이면서도 이번에 채플린의 어머니 역할을 한
제럴딘 채플린(Geraldine Chaplin, 1944. 미국)
아버지의 분신을 보는 듯 그의 연기에 만족을 했다고 한다.
또한 앤소니 홉킨스(Anthony Hopkins)를 포함하여,
케빈 클라인(Kevin Kline), 다이앤 레인(Diane Lane), 제임스 우즈
(James Woods)등의 조역 연기도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는데,
찰리 채플린의 아내들과 또 그의 삶에 관련이 되었던 이들 대부분의
뒷이야기들이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면서 또 다른 흥미를 유발하였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의 후기(자막 인용- 필독 요망):

찰스 스펜서 채플린(Charles Spencer Chaplin- Robert Downey Jr.):
만 83번째 생일(1972년)에 미국 아카데미상의 특별상 수상(마지막 장면).
며칠 후 할리우드를 떠나 스위스의 집으로 돌아감.
1975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His Knighthood)
수여받음.
54년 동안 81편의 영화 제작, 그중에 5편만이 유성영화이었는데, 67편은
그의 나이 30세 이전에 제작이 되었음.
죽기 직전까지도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이었고 작곡 중이었음.
1977년 크리스마스에 향년 88세의 나이로 스위스 베베(Vevey)의
자택에서 많은 식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 함.

한나 채플린(Hannah Chaplin-Geraldine Chaplin):
찰리의 모친이자 제랄딘의 할머니,
찰리가 사준 태평양 연안의 저택에서 7년 거주 후 별세함.

시드니 채플린(Sydney Chaplin-Paul Ryes):
제2차 세계대전 후 은퇴를 하여 남부 프랑스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매년 여름을 외제(外弟)이었던 찰리 채플린의 스위스 저택에서 지냄.
찰리의 76회 생일에 별세함.

후레드 카르노(Fred Karno-John Thaw):
찰리에게 보드빌(Vaudeville)에서 처음 일자리를 주었던 장본인.
1926년 파산을 하고 15년 후에 무일푼으로 별세.

헤티 켈리(Hetty Kelly-Moria Kelly):
찰리의 (진정한)첫사랑. 정치가와 결혼한 후 25세에 사망.
찰리는 평생 그녀를 잊지 못했으며,
그의 영화 속 수많은 여주인공(Heroine)들의 영감과 모델이 되었음.

조지 헤이든(George Haydon-Anthony Hopkins):
이 영화 속의 유일한 가공인물(작가 역).
실제로 찰리가 쓴 자서전, 'My Autobiography'는 1964년에 출판이
되었고 바로 이 영화의 토대가 되었다.



맥 세닛(Mack Sennette-Dan Aykroyd):
(무성 영화) 코미디계의 황제였으나
유성영화의 등장에 가려져 거의 잊혀 졌다가,
1937년에 할리우드로 돌아와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메이블 노먼드(Mabel Normand-Marisa Tomei):
1922년 할리우드 감독 살인사건에 휩싸인 후, 마약과 섹스스캔들에 연루.
연기 활동을 중단함.

에드나 퍼바이언스(Edna Purviance-Penelope Ann Miller):
찰리영화에서 30편 이상 주연. 여배우로서 극적인 발전이 없자 은퇴.
찰리는 평생 동안 그녀에게 연금형태의 급여를 지급.

더그 훼어뱅스(Douglas Fairbanks-Kevin Kline):
찰리, 메리 픽포드(Mary Pickford), D W 그리피스(D W Griffith)와 함께
1919년에 ‘유나이티드 아티스츠(United Artists)' 영화사를 공동 설립.
1936년, 메리와 이혼. 3년 후 심장마비로 별세함.

메리 픽포드(Mary Pickford-Maria Pitillo):
‘유나이티드 아티스츠(UA)’ 운영의 핵심인물.
찰리와 할리우드 내 최고의 수입경쟁을 벌이다
86세에 ‘미국의 연인(America's Sweetheart)'이미지를 남기며 별세.

밀드레드 해리스(Mildred Harris-Milla Jovovici):
찰리의 첫 번째 부인.
찰리와 이혼 후에 싸구려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다 43세에 알콜 중독으로 사망.



J. 에드거 후버(J. Edgar Hoover-Kevin Dunn):
50년 이상 FBI 국장을 역임 함. 평생 독신이었고,
유명 인들을 조정하기위하여 수많은 요원들에게 그들의 사생활 뒷조사를
명령함. 찰리의 FBI 파일은 무려 1,900페이지에 달함.

리타 그레이(Lita Grey-Deborah Moore):
찰리의 두 번째 부인. 이 영화가 완성될 당시까지도 캘리포니아에서 둘째 아들,
시드니 주니어(Sydney Jr.)와 함께 살았는데, 첫 아들, 찰리 채플린 주니어
(Charles Chaplin Jr.)는 1968년에 사망, 그녀는 1995년에 사망.

폴렛 고다드(Paulette Goddard-Diane Lane):
찰리의 세 번째 아내이자 레비(Levy)로 알려진 유명배우.
찰리와 이혼 후에도 절친한 친구사이를 유지하다, 1966년 연기생활 은퇴 후,
새 남편과 함께 찰리 부부가 살던 스위스의 가까운 곳에서 생활을 함.

조앤 배리(Joan Barry-Nancy Travis):
여생의 대부분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는데 생사여부를 모름.
찰리는 친아버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딸인
캐롤 앤(Carol Anne)에게 그녀가 21세가 되던 해까지 계속 양육비를 지급함.

조셉 스캇(Joseph Scott-James Woods):
그의 당시 법정연설을 현대화하여 이 영화에 참고.
캘리포니아 법정은 혈액검사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채플린의 양육권소송은 미국 사법역사상 최대의 오심사례로 손꼽힌다.

우나 오닐 채플린(Oona O' Neil Chaplin-Moria Kelly):
극작가, 유진 오닐(Eugene O' Neil)의 딸로서 18세에 찰리와 결혼 후,
8명의 자녀를 낳았다. 찰리가 미국에서 추방을 당하자 자신도 시민권을
포기하고 여생을 스위스에서 보냄.
찰리가 죽은 지 14년 후, 1991년 9월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계속
찰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 하였다.

* 찰리 채플린의 공식 웹 사이트: http://www.charliechaplin.com/



* OST 앨범 수록곡 리스트 :


1. Chaplin-Main Theme (위의 본문에 음악과 해설)
2. Early Days In London
3. Charlie Proposes
4. To California/The Cutting Room
5. Discovering The Tramp/The Wedding Chase
6. Chaplin's Studio Opening
7. Salt Lake City Episode
8. The Roll Dance
9. News Of Hetty's Death/Smile
10. From London To L.A.
11. Joan Barry Trouble/Oona Arrives
12. Remembering Hetty
13. Smile
(위의 본문에 음악과 해설)
14. The Roll Dance
15. Chaplin-Main Theme/Smile
16. Smile - Robert Downey Jr.




* 관련 동영상 모음





* 'Charlie Chaplin Tribute'(Part 1) 입니다.


* 'Charlie Chaplin Tribute'(Part 2) 입니다.


* 'Best Of Charlie Chaplin' 입니다.




Jay. 213번째 영화리뷰. Sep.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