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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이야기들-1970년대상

볼사리노 / Borsalino 음악적 리뷰 + 동영상 모음

by 음악평론가김제건 2011. 12. 6.
볼사리노 / Borsalino 음악적 리뷰 + 동영상 모음
1970년/ 각본 + 감독: Jacques Deray / 주연: Jean Paul Belmondo +
Alain Delon / 음악: Claude Bolling /126분



1974도, 제 63회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작품(Best Picture)상을 비롯하여
무려 7개 부문에서 수상을 한바 있는
‘스팅(The Sting, 1973)’이라는 작품은
조지 로이 힐(George Roy Hill. 1921-2002, 미국)
감독 자신이 직접 발굴을 하고 선곡을 하였다는
‘엔터테이너 (The Entertainer)’라는 곡으로
20세기 들어 몇 십 년 동안 거의 잊혀 졌었던
‘랙타임(Ragtime)‘스타일의 음악을 부활시켰다고
요란을 떨기도 했었다.
(물론 대중 음악계에도 큰 영향을 준 작품이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3년 전에 대서양 건너 프랑스에서 개봉이 되었던
이 작품, ‘볼사리노(Borsalino)‘에는
랙타임(Ragtime) 스타일의 주제곡이 이미
등장을 하고 있었으니 과연 어찌된 일일까?



블루스(Blues)에서 파생이 된 음악의 한 형태인
‘랙타임(Ragtime)‘의 대표적인 음악가,
스캇 조플린(Scott Joplin. 1868-1917, 미국 텍사스)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던 조카에게서 영감을 얻었다는
조지 로이 힐(George Roy Hill) 감독은
마빈 햄리쉬(Marvin Hamrish. 1944, 미국 뉴욕)
협력을 하여 그의 (복원)편곡으로 당시에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었다,
그러나 영화, ‘스팅(The Sting, 1973)’의 음악은
바로 이 ‘볼사리노(Borsalino)‘의 주제곡 영향을
어떤 의미에선 안 받았다고 부정하진 못 할 것이다.
아니라고 한다면, 그만큼 이 작품의 영화음악을 만든
끌로드 볼링(Claude Bolling. 1930. 깐느)
선견지명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데,
끌로드 볼링 역시 19세기말에 활약을 하였던
스캇 조플린을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



영화제로 유명한 깐느에서 태어난
끌로드 볼링(Claude Bolling. 1930. 깐느)
영화 음악가라기보다는 프랑스의 피아니스트로서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더 유명한 듯한데,
그건 아마도 2003년 이후, 매 해 내한을 하면서
가졌던 여러 차례의 공연 덕분일 것이다.
특히 1960년대부터,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을 그 시작으로 보고 있는
재즈와 클래식의 크로스오버 연주로도 유명하지만
재즈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의 실력도 정말 알아줄만 하다.
(아래의 끌로드 볼링의 랙타임 피아노 연주모음 참조)
또한 1958년부터 100편이 넘는 영화와 TV극의
오리지널 스코어(OS)등을 작곡해왔지만,
주로 알랑 드롱이 출연한 영화의 주제곡들을
많이 만들었었는데, 그 중에서도 바로 이 영화의
주제곡이 가장 유명한 것이다.
이 곡은 그가 존경한다는 스캇 조플린에게 바치는
오마주(Homage)형태로 작곡이 되었었다고 하지만,
어쨌든 이 곡은 몇 년 후, 바다 건너 할리우드의 영화,
‘스팅(The Sting, 1973)’의 영화음악 작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 것만은 틀림이 없고,
또 1970년대의 유행의 하나로 복귀를 한 랙타임 스타일의
음악적 부활도, 그래서, 할리우드의 마빈 햄리쉬 이전에
바로 이 끌로드 볼링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 끌로드 볼링의 피아노 연주모음:




‘버디(Buddy)’라고 하면
"친구, 단짝, 동료“에서부터 형제까지도 포괄적으로 의미하면서,
‘버디 무비(Buddy Movie)’라는 영화가 무엇인지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주는데, 요즈음은 좀 뜸해졌지만
한 때 이 ‘버디 무비’의 인기가 엄청나던 시절이 있었다.
마초(Macho)적인 분위기가 강열했었던 이쪽 장르에
심지어는 ‘여성 버디 무비‘라고 불리던
‘델마 와 루이스(Thelma & Louise.1991)’라는 작품까지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오래전의 ‘흑 과 백(The Defiant One. 1958)’
물론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만, 1960년대 후반의
‘아메리칸 뉴시네마(American New Cinema)’ 붐 이전에도
이 ‘버디 무비‘장르의 (초기)히트작들이 없던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지 라이더(Easy Rider.1969)’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
같은 작품들을 역시 이 ‘버디 무비’의 대표작으로 꼽지 않을 수가 없다.



할리우드의 ‘리셀 웨폰(Lethal Weapon. 1987-1998)’시리즈에
버금가는 우리나라의 ‘투캅스(1993-1998)’시리즈도
비슷한 시기의 대표적인 ‘버디 무비’가 되겠지만,
폴 뉴먼(Paul Newman)과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가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시대와 때를 같이 하여
프랑스 최고의 남성배우, 두 명을 기용하여 만든 이 작품,
‘볼사리노(Borsalino)‘
역시도 1970년대의 ‘버디 무비’의 유행에
큰 일조를 하였을 뿐 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현대 프랑스 영화
최고의 ‘버디 무비’로 손꼽히고 있다.
그 당시, 할리우드와 함께 전 세계 영화시장을 주물럭거린다는
자부심이 대단했었던 기세등등한 프랑스 영화계로서는
할리우드 산 ‘버디 무비’의 대표작,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
훨씬 능가하는 수작이라고 선전을 하였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이 작품은 두 주연배우의
인기에 힘입어서 상당히 오랫동안 큰 호응을 얻기도 했었다.



1960-70년대, 전 세계 남성 배우 중,
특히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미남배우로 꼽히던
알랑 드롱(Alain Delon. 1935. 프랑스)보다도
영화계에 먼저 데뷔(1956년)를 한
장 뽈 벨몽도(Jean-Paul Belmondo. 1933. 프랑스)에 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견중의 하나가
그의 인기는 잘 생긴 알랑 드롱보단 한 수 아래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 본토를 비롯한 유럽 각국과
스페니쉬 언어권(히스패닉)의 남미에서는
오히려 장 뽈 벨몽도의 인기가 알랑 드롱보다도
한 수 위였었다고 한다.
특히 액션영화에서 더욱 그랬다고 하는데,
어쨌든 ‘리오의 사나이(L' Homme De Rio. 1964)‘
‘어느 개인날 아침 갑자기(Par Un Beau Matin D'ete. 1965)’등등으로
최고의 전성기, 1960년대를 보낸 장 뽈 벨몽도는
여러 언론에서 최고의 라이벌 배우로 지명을 한 알랑 드롱과
드디어 이 작품을 통해 한 판의 연기 대결을 펼치기로 결심을 한다.
물론 이는 둘 다 무명이었던 1958년에
‘Sois Belle et Tais-Toi (Be Beatiful But Shut Up)’
함께 출연 했을 때와는 또 다른 경우인데,
“내 비록 얼굴이야 좀 처질지라도 연기만큼이야 알랑보다는
잘 하지”
라는 농담 섞인 홍보성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던
벨몽도에게 실상 드롱은 무척이나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1930년대.
프랑스의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이유(Marseilles).
대부분의 항구도시들이 그렇듯이, 각종 이권들을 서로
쟁취키 위한 여러 갱들의 조직 확산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갱단에서 중간 보스 급으로 있다가 감옥에서 형을 다 치른
로크 시프레디(로쉬-Roch Siffredi - Alain Delon. 1935. 프랑스)
출옥을 하자마자 옛 애인인
로라(Lola-Catherine Rouvel. 1939. 프랑스)
찾아 나섰다가, 이웃 지역의 또 다른 중간보스,
후랑소와 카펠라(Francois Capella-Jean-Paul Belmondo. 1933. 프랑스)
치고받는 주먹 대결을 하게 되면서, 서로 의기투합을 하게 된다.
곧이어 힘을 합쳐 경마나 권투 경기 같은 사행 사업들을 시작한
이들은 폴리(Poli)같은 지역 보스들과 부딪치게 되자,
그가 운영하는 정육 창고에 불을 지르면서 정면 대결을 불사한다.
그리고 재래시장이 있는 넓은 지역을 성공적으로 장악하게 된
이들은 이제 서서히 마르세이유 시의 암흑가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망을 꿈꾸며 현재의 성공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갱단이나 마피아 조직들이 다 그렇듯이,
이들이 급속히 커나가는 걸 좋게 보는 다른 조직이 있겠는가?
시의 정치에까지 관여를 하게 된 이들은 시장 후보자인
리날디(Mme Rinaldi-Corinne Marchand. 1937. 빠리)
저격사건을 계기로
마리오(Mario-Mario David. 1927. 프랑스)라는
또 다른 조직의 거물급 보스와 숙명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영국 출신의 인기 작가,
제임스 해드리 체이스(James Hadley Chase. 1906-1985. 영국)
출판한 동명 타이틀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을 통해,
자크 드레이(Jacques Deray. 1929-2003. 프랑스)감독은
프랑스 영화계의 쟁쟁한 라이벌, 알랑 드롱 과 장 뽈 벨몽도,
투 탑을 내세운 (버디 무비)히트작 연속 행진을 시작하게 된다.
즉, 1970년의 이 작품, ‘볼사리노(Borsalino)’를 계기로 해서
또 그 속편 (‘Borsalino & Co.‘ 1974)도 만들어
이 두 명의 대 스타를 더욱 빛나게 하였지만,
알랑 드롱과는 ‘태양은 알고있다(La Picine. 1969)’에서부터
1994년도의 ‘L' Ours en Peluche’ 까지,
그리고 장 뽈 벨몽도와는 이 작품에서부터
‘형사, 조르당(Le Marginal. 1983)‘ ‘Le Solitaire(1987)‘까지,
영화감독으로 1960년에 데뷔를 한 이래 수많은 작품들을
몇 십년동안 함께 하면서 서로에게 윈-윈하는 좋은 결과를
낳았었다.
여하튼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히트한
대부분의 알랑 드롱과 장 뽈 벨몽도의 영화들은 거의 다
이 자크 드레이의 감독 작품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고 심지어는 알랑 드롱과 장뽈 벨몽도의 전문
감독이라는 별칭도 얻었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명품‘이라는 단어가 사회 문제까지도
되기도 했었는데, 이 작품이 나오기 전부터도 그랬었지만,
이 영화의 제목인 ‘볼사리노(Borsalino)‘라는 단어는
이태리에서 만든 최고급 명품 모자의 상표이기도 하다.
토리노의 인근지역에서 1857년부터
주세페 보르살리노(Giuseppe Borsalino)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져 유럽 전역에서 남성용 고급 중절모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이는 마치 영국의 바바리(버베리-Burberry)
코트가 트렌치코트(Trench Coat)의 대명사가 된 것과도 같다.
20세기 초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험프리 보가트가 애용을
하면서 더욱 더 유명해졌지만,
1970년대에 이 영화가 개봉되면서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
엄청난 혜택을 받았었고, 또 큰 매출증대도 가져왔지만 대신
이 영화의 주인공들같이 갱들이나 쓰는 모자로 오해를 받기도
했었다고 한다.
‘볼사리노‘ 회사는 21세기 지금도 완전 100% 수작업으로만
이 명품 모자들을 생산하고 있다고 하는데,
원조 꽃미남, 알랑 드롱이 출연을 한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모자를 포함하여) 의상을 가장 화려하고 멋지게 입은
작품으로도 기억에 남는 게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 관련 동영상 모음:











Jay. 262번째 영화리뷰. Oct.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