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의 딸(처녀) / Ryan's Daughter 리뷰 + 동영상 모음
1970년/감독; David Lean/주연: Sarah Miles+Robert Mitchum+
Christopher Jones/음악: Maurice Jarre/187분,70mm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로 치자면...” 이라는 가정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장소를 말하자면 제주도 남단, 서귀포 근방의
아주 경치가 좋은 바닷가의 한 작은 마을 정도가 될 것이고,
(바람이 아주 센 곳),
시대로 치자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아주 아주 오래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한 유부녀가 일본군 장교와 눈이 맞아
불륜에 빠졌다고 하면, 과연 그 시대에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일까?
그러나 이렇게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한 젊은 여인의
비극을 바로 영국의 지배를 받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1910년대의 아일랜드(Ireland)를 무대로 그린 영화가
바로 이 ‘라이언의 딸(처녀)’ 이다.
(1970년대 초, 한국에서 개봉될 때의 제목은 ‘라이언의 처녀’)
이 영화는 단순히 사랑 이야기만을 다룬 작품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북아일랜드 문제는 여전히 골치 거리로 남아 있지만,
1922년에 독립을 한 아일랜드 공화국 수립과정에서의 독립운동과
차라리 영국이 독일에게 졌으면 좋겠다고 저주를 퍼붓는
주민들의 강한 애국심이 줄거리에서 큰 배경의 축으로 등장을 한다.
또한 제목에 등장하는 바로 라이언이라는 자도
겉으로는 독립운동을 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영국군의 정보원 노릇을 하는 비겁한 민족 배반자로 나온다.
바람이 항상 세차게 부는 아일랜드 서해안,
딩글(Dingle)반도의 한 작은 바닷가 어촌인 킬러리(Kirrary)마을.
이곳에서 홀아비로서 한 주점을 운영하는
라이언(Thomas Ryan-Leo Mckern,1920-2002, 영국)에게는
항상 공주라고 부르는 다 큰 외동딸이 있는데,
이 로지 라이언(Rosy-Sarah Miles, 1941, 영국)은
나이 차이가 많고 거기다 상처(喪妻)를 한 ‘섬마을 선생님(?)’,
찰스(Charles Shaughnessy-Robert Mitchum, 1917-1997,미국)를
짝 사랑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져, 마을 사람들 모두 모여
축하를 해주는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위의 사진)
그리고 드디어 학교 사택(위의 두 번째 사진)에서
첫날밤을 맞이한 찰스와 로지.
그러나 찰스는 로지에게 키스만 할뿐 잘 자라고 말한 뒤에
그냥 돌아눕는다.
놀라고 절망적인 표정을 감출 수 없는 로지.
그 후, 학교 사택에서의 결혼생활은 그저 밋밋하기만 하고,
항상 무언가가 아쉬운 느낌이다.
그럴 즈음 이곳에 새로운 영국군 수비대장으로 젊고 잘 생긴
도리안(Randolph Doryan-Christopher Jones,1941, 미국 테네시)
소령이 부임을 한다.
프랑스 전선에서 부상을 당해 한쪽 다리를 저는 그는
한편으로는 전쟁망상증의 정신적 질환으로도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마을을 돌아보다 주점에 들른 그는 로지와의 첫 번 만남에서
그만 키스를 나누게 되고, 며칠 후 둘은 깊은 숲 속에서
대낮에 정사를 갖게 된다.
그리고 로지는 계속 그 황홀경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하는데,
그러나 좁은 마을에 소문은 금방 퍼지게 되었고,
동네 사람들에게 그녀는 매국노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런 와중에서 모든 걸 알고도 눈감아주는 남편,
찰스는 또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한편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을 이끄는 (지역)대장,
오리리(Tim O' Leary- Barry Foster, 1931-2002, 영국)가
해안에서 독일제 무기를 인수하기 위하여
이 마을에 잠입을 하고 라이언에게 협조를 구한다.
그러나 폭풍우가 몰려온 새벽에 온 마을 사람이 총동원이 되어
파도에 떠 밀려온 무기들을 건져 차에 실고 떠나려는 순간에
도리안 소령과 영국군이 갑자기 나타나 오리리 일행을 체포 한다.
분노하는 마을 사람들,
그들은 로지가 이 사실을 밀고 한 것으로 간주하고서는,
마을 학교로 몰려가 그녀를 끌어내어 발가벗기고
긴 머리를 잘라 버리는 집단 폭행을 가한다.
자기가 밀고 했으면서도 사랑하는 딸이 당하는 그 모습을
괴로워하면서 지켜보는 비겁한 라이언.
얼마 후, 도리안 소령은 해변에서 폭탄으로 자살을 하고,
찰스와 로지는 야유를 퍼붓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 하고
더블린을 향해 길을 떠난다.
이 영화는 이 네 사람의 주역 외에 주연 못지않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명의 조연 아닌 조연이 등장을 하는데,
그중 한 명은 마을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 을 하는 콜린스 신부역의
트레버 하워드(Trever Howard. 1913-1988,영국)이다.
라이언 못지않게 로지를 걱정하는 그는
로지의 뺨을 때리면서까지 그녀를 바로 잡기 위해 애쓰는데,
끝 장면에서는 버스에 오르는 찰스에게 마지막 선물이라며
다음과 같은 말도 한다.
“자네가 로지와 더블린에 가서 곧 헤어지리라는 것을 아네.....
그러나 제발 그녀를 버리지 말아주게......
이 부탁이 자네에게 주는 나의 마지막 선물이야.....“
또 한 명은 말을 못하는 절름발이 백치로 나오는 마이클역의
존 밀스(John Mills. 1908-2005, 영국) 인데
로렌스 올리비에경과 같이 ‘경(Sir)’칭호를 받은 그 대배우의
정말 바보 같은 분장과 기막힌 연기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로지를 흠모하면서 양산을 주워주는 첫 장면에서 부터,
그녀가 마을을 떠나는 끝 장면까지(심지어 밀회 장면까지도)
계속 로지의 주위에서 그녀를 관망하는 자로 나온다.
이 역으로 그는 1971년도 제43회,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남우 조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비중이 있는 이 마이클의 극중 존재(아래 사진 맨 오른쪽)가
오히려 이 영화를 망쳤다고 평한 자도 있었다.
거장 감독도 때로는 욕심이 지나쳐, 너무 많은 것을 보여
주려다가 작품을 망치는 경우를 우리는 가끔 보게 된다.
기가 막힌 장관의 경치를 배경으로
자연과 또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멋있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첫 장면에서부터 절벽아래 바다로
바람에 날려가는 양산의 장면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의욕 넘치는 노력들은 오후의 정사시퀀스에
나오는 거미줄과 나뭇잎 사이로 비취는 햇살,
또 햇볕 가득한 모래위의 발자국 같은 디테일한 표현과
폭풍우속의 거대한 파도를 담은 스펙터클한 장면 등.......
수 없이 많은 곳에서 발견할 수가 있는데(아카데미 촬영상 수상),
네 사람의 주역 말고도 여러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비롯하여
독립 운동까지 다루려다 보니 너무 이야기가
방만(산만)하여 졌을까?
3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도대체 뭘 이야기하려는지 모르겠다는
혹평들을 그만 받게 되었다.
차라리 성불구자인 남편과 사는 로지의 성적 욕구만을
집중적으로 밀도(심도) 있게 다루었다면 어떠했을까하는
생각도 드는데, (하기야, 제목부터가 집중력이 좀 떨어진다)
어쨌든, 이 작품은 환갑을 넘긴 데이빗 린 감독으로 하여금
그동안 쌓아 올린 명성을 하루아침에 날리게 한 불운한 영화가
되었고, 이후 그는 무려 14년간이나 영화계를 떠나 있게 된다.
(아래사진 우측)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 1948)‘ 나
‘써머 타임(Summertime. 1955)’ 같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에서 70mm 촬영 기술이 개발되면서
콰이 강의 다리(1957),‘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닥터 지바고 (1965) 같은 큰 화면의 대작으로
크게 성공을 한 작가 겸 제작자이자 감독인
데이빗 린 (David Lean. 1908-1991, 영국) 경.
제작도 직접하며 엄청나게 재미를 본 ‘닥터 지바고’ 이후,
5년 만에 다시 일선에 나서서 오랫동안 심혈을 기우린
이 작품이 만들어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하였는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차라리 MGM의 권유(중도포기)를
따르는 것이 그로서는 더 나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작품을 냉정히 평가해보아도 전작들 같은 감동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말들을 하였다.)
3년간 준비를 했다는 건 그렇다 치고, 예산을 두 배나 초과하면서
무려 일 년 동안이나 그 작은 마을에서 촬영을 계속했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츄바스코(Chubasco, 1968)‘라는 영화로
‘제2의 제임스 딘’이라며 한 순간에 급속도로 인기를 얻었던
크리스토퍼 존스를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장교 역으로 기용한 것도
존 밀스를 비롯한 다른 주역들의 명연기에 먹칠을 한 결과가 되었고,
젊은 존스 역시도 이 영화 출연이후 안타깝게도
한 순간에 몰락을 하게 되었다.
(이후, 16년간이나 영화에 출연치 않음)
그러나 미인형 배우는 아니지만 철없는 젊은 아내 역을 잘 소화한
새라 마일즈(Sarah Miles. 1941,영국)는
대단한 거장배우들 사이에서도 자기 몫은 충분히 하였고,
로버트 밋첨의 중후한 연기 역시 묵직한 느낌이 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닥터 지바고’에서
이미 데이빗 린과 손발을 맞춰온 프랑스 출신의 작곡가,
모리스 잘(Maurice Jarre. 1924-2009. 리옹)은
이번에도 역시 대작에 걸 맞는 멋진 주제음악을 다시 들려주었다.
바람 소리와 함께 첫 장면에서부터 들려오는
이 아름다운 메인 테마(Theme)곡은 이후에도 계속 변주를 통한
반복이 연속된다.
그러나, 누구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백치, 마이클이 등장을 하여
절뚝거리며 걷는 장면들마다 코믹한 스타일로 나오는 음악은
별로 좋게 들리지가 않는다.
특히 도리안 소령의 훈장을 바닷가(정사 현장)에서 주워,
가슴에 달고 마을에 나타나 마을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을 때
행진곡풍으로 나오는 음악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아마 이런 넌 센스적인 요인들 (음악 연출)도 영화 전체혹평의
빌미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이 영화의 명장면인 양산이 날라 가는 장면(아래 포스터)에서
들리는 그 아름다운 메인 테마(Theme)곡은 누가 들어도 금방
명곡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섬마을 선생님, 찰스는 사택에 있는 축음기를 매우 아끼고,
또 자주 그 기계를 이용하여 음악을 듣는데, 당시의 영국 정부가
듣기를 금지시켰다는 (적국의) 베토벤을 매우 좋아하여서
(그의 흉상도 거실에 있음) ‘운명 교향곡’을 비롯한 몇 곡의
베토벤 음악이 영화 초반부에 등장을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영화에서와 같이 LP 레코드는 분명히 없었을 텐데?)
“사랑해서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로
시작하는 우리의 옛 전통가요가 있다.
사랑해서 안 될 거라면 애당초 시작도 하지 않아야 하는 건데,
그러나 어리석은 게 우리들 인간이 아니겠는가?
안 되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빠져드는 약한 인간의 이런
어리석음은 그래서 오래전서부터 많은 소설과 이런 영화들의
좋은 소재가 되어 왔었는데 역시 결말들은 거의 다 비극적이다.
하지만,
또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내야만 결국 장사도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족. 1) 미국의 평론가들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에 관해 1908년이다 또는 1920년대이다 라고
다들 임의로 해석들을 하였는데, 물론 정확한 해는 말하기 힘들겠지만,
1910년대의 중반에서 말경이 그 정답이 될 듯합니다.
우선 도리안 소령이 1차 대전에 참전하여 프랑스 최전방에서 부상을
당하고 왔으니, 이는 전쟁이 발발한 1914년 이후라는 얘기고,
또 극중에서 마을 주민들이 차라리 점령군인 영국군이 (적국인)
독일군에게 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로 보아서는 아직도
(1차 대전)종전 전이라는 뜻이니 분명 1917년 전이라는 얘기죠.
따라서 이 영화는 1914년에서 1917년 사이의 이야기인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사족.2) 드디어 이 영화의 DVD가 미국과 한국에서 2006년 봄에
(Two Disc Special Edition) 출시가 되었습니다.
* 관련 동영상 모음:
revised. Feb. 2019.
1970년/감독; David Lean/주연: Sarah Miles+Robert Mitchum+
Christopher Jones/음악: Maurice Jarre/187분,70mm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로 치자면...” 이라는 가정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장소를 말하자면 제주도 남단, 서귀포 근방의
아주 경치가 좋은 바닷가의 한 작은 마을 정도가 될 것이고,
(바람이 아주 센 곳),
시대로 치자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아주 아주 오래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한 유부녀가 일본군 장교와 눈이 맞아
불륜에 빠졌다고 하면, 과연 그 시대에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일까?
그러나 이렇게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한 젊은 여인의
비극을 바로 영국의 지배를 받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1910년대의 아일랜드(Ireland)를 무대로 그린 영화가
바로 이 ‘라이언의 딸(처녀)’ 이다.
(1970년대 초, 한국에서 개봉될 때의 제목은 ‘라이언의 처녀’)
이 영화는 단순히 사랑 이야기만을 다룬 작품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북아일랜드 문제는 여전히 골치 거리로 남아 있지만,
1922년에 독립을 한 아일랜드 공화국 수립과정에서의 독립운동과
차라리 영국이 독일에게 졌으면 좋겠다고 저주를 퍼붓는
주민들의 강한 애국심이 줄거리에서 큰 배경의 축으로 등장을 한다.
또한 제목에 등장하는 바로 라이언이라는 자도
겉으로는 독립운동을 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영국군의 정보원 노릇을 하는 비겁한 민족 배반자로 나온다.
바람이 항상 세차게 부는 아일랜드 서해안,
딩글(Dingle)반도의 한 작은 바닷가 어촌인 킬러리(Kirrary)마을.
이곳에서 홀아비로서 한 주점을 운영하는
라이언(Thomas Ryan-Leo Mckern,1920-2002, 영국)에게는
항상 공주라고 부르는 다 큰 외동딸이 있는데,
이 로지 라이언(Rosy-Sarah Miles, 1941, 영국)은
나이 차이가 많고 거기다 상처(喪妻)를 한 ‘섬마을 선생님(?)’,
찰스(Charles Shaughnessy-Robert Mitchum, 1917-1997,미국)를
짝 사랑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져, 마을 사람들 모두 모여
축하를 해주는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위의 사진)
그리고 드디어 학교 사택(위의 두 번째 사진)에서
첫날밤을 맞이한 찰스와 로지.
그러나 찰스는 로지에게 키스만 할뿐 잘 자라고 말한 뒤에
그냥 돌아눕는다.
놀라고 절망적인 표정을 감출 수 없는 로지.
그 후, 학교 사택에서의 결혼생활은 그저 밋밋하기만 하고,
항상 무언가가 아쉬운 느낌이다.
그럴 즈음 이곳에 새로운 영국군 수비대장으로 젊고 잘 생긴
도리안(Randolph Doryan-Christopher Jones,1941, 미국 테네시)
소령이 부임을 한다.
프랑스 전선에서 부상을 당해 한쪽 다리를 저는 그는
한편으로는 전쟁망상증의 정신적 질환으로도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마을을 돌아보다 주점에 들른 그는 로지와의 첫 번 만남에서
그만 키스를 나누게 되고, 며칠 후 둘은 깊은 숲 속에서
대낮에 정사를 갖게 된다.
그리고 로지는 계속 그 황홀경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하는데,
그러나 좁은 마을에 소문은 금방 퍼지게 되었고,
동네 사람들에게 그녀는 매국노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런 와중에서 모든 걸 알고도 눈감아주는 남편,
찰스는 또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한편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을 이끄는 (지역)대장,
오리리(Tim O' Leary- Barry Foster, 1931-2002, 영국)가
해안에서 독일제 무기를 인수하기 위하여
이 마을에 잠입을 하고 라이언에게 협조를 구한다.
그러나 폭풍우가 몰려온 새벽에 온 마을 사람이 총동원이 되어
파도에 떠 밀려온 무기들을 건져 차에 실고 떠나려는 순간에
도리안 소령과 영국군이 갑자기 나타나 오리리 일행을 체포 한다.
분노하는 마을 사람들,
그들은 로지가 이 사실을 밀고 한 것으로 간주하고서는,
마을 학교로 몰려가 그녀를 끌어내어 발가벗기고
긴 머리를 잘라 버리는 집단 폭행을 가한다.
자기가 밀고 했으면서도 사랑하는 딸이 당하는 그 모습을
괴로워하면서 지켜보는 비겁한 라이언.
얼마 후, 도리안 소령은 해변에서 폭탄으로 자살을 하고,
찰스와 로지는 야유를 퍼붓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 하고
더블린을 향해 길을 떠난다.
이 영화는 이 네 사람의 주역 외에 주연 못지않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명의 조연 아닌 조연이 등장을 하는데,
그중 한 명은 마을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 을 하는 콜린스 신부역의
트레버 하워드(Trever Howard. 1913-1988,영국)이다.
라이언 못지않게 로지를 걱정하는 그는
로지의 뺨을 때리면서까지 그녀를 바로 잡기 위해 애쓰는데,
끝 장면에서는 버스에 오르는 찰스에게 마지막 선물이라며
다음과 같은 말도 한다.
“자네가 로지와 더블린에 가서 곧 헤어지리라는 것을 아네.....
그러나 제발 그녀를 버리지 말아주게......
이 부탁이 자네에게 주는 나의 마지막 선물이야.....“
또 한 명은 말을 못하는 절름발이 백치로 나오는 마이클역의
존 밀스(John Mills. 1908-2005, 영국) 인데
로렌스 올리비에경과 같이 ‘경(Sir)’칭호를 받은 그 대배우의
정말 바보 같은 분장과 기막힌 연기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로지를 흠모하면서 양산을 주워주는 첫 장면에서 부터,
그녀가 마을을 떠나는 끝 장면까지(심지어 밀회 장면까지도)
계속 로지의 주위에서 그녀를 관망하는 자로 나온다.
이 역으로 그는 1971년도 제43회,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남우 조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비중이 있는 이 마이클의 극중 존재(아래 사진 맨 오른쪽)가
오히려 이 영화를 망쳤다고 평한 자도 있었다.
거장 감독도 때로는 욕심이 지나쳐, 너무 많은 것을 보여
주려다가 작품을 망치는 경우를 우리는 가끔 보게 된다.
기가 막힌 장관의 경치를 배경으로
자연과 또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멋있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첫 장면에서부터 절벽아래 바다로
바람에 날려가는 양산의 장면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의욕 넘치는 노력들은 오후의 정사시퀀스에
나오는 거미줄과 나뭇잎 사이로 비취는 햇살,
또 햇볕 가득한 모래위의 발자국 같은 디테일한 표현과
폭풍우속의 거대한 파도를 담은 스펙터클한 장면 등.......
수 없이 많은 곳에서 발견할 수가 있는데(아카데미 촬영상 수상),
네 사람의 주역 말고도 여러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비롯하여
독립 운동까지 다루려다 보니 너무 이야기가
방만(산만)하여 졌을까?
3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도대체 뭘 이야기하려는지 모르겠다는
혹평들을 그만 받게 되었다.
차라리 성불구자인 남편과 사는 로지의 성적 욕구만을
집중적으로 밀도(심도) 있게 다루었다면 어떠했을까하는
생각도 드는데, (하기야, 제목부터가 집중력이 좀 떨어진다)
어쨌든, 이 작품은 환갑을 넘긴 데이빗 린 감독으로 하여금
그동안 쌓아 올린 명성을 하루아침에 날리게 한 불운한 영화가
되었고, 이후 그는 무려 14년간이나 영화계를 떠나 있게 된다.
(아래사진 우측)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 1948)‘ 나
‘써머 타임(Summertime. 1955)’ 같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에서 70mm 촬영 기술이 개발되면서
콰이 강의 다리(1957),‘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닥터 지바고 (1965) 같은 큰 화면의 대작으로
크게 성공을 한 작가 겸 제작자이자 감독인
데이빗 린 (David Lean. 1908-1991, 영국) 경.
제작도 직접하며 엄청나게 재미를 본 ‘닥터 지바고’ 이후,
5년 만에 다시 일선에 나서서 오랫동안 심혈을 기우린
이 작품이 만들어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하였는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차라리 MGM의 권유(중도포기)를
따르는 것이 그로서는 더 나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작품을 냉정히 평가해보아도 전작들 같은 감동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말들을 하였다.)
3년간 준비를 했다는 건 그렇다 치고, 예산을 두 배나 초과하면서
무려 일 년 동안이나 그 작은 마을에서 촬영을 계속했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츄바스코(Chubasco, 1968)‘라는 영화로
‘제2의 제임스 딘’이라며 한 순간에 급속도로 인기를 얻었던
크리스토퍼 존스를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장교 역으로 기용한 것도
존 밀스를 비롯한 다른 주역들의 명연기에 먹칠을 한 결과가 되었고,
젊은 존스 역시도 이 영화 출연이후 안타깝게도
한 순간에 몰락을 하게 되었다.
(이후, 16년간이나 영화에 출연치 않음)
그러나 미인형 배우는 아니지만 철없는 젊은 아내 역을 잘 소화한
새라 마일즈(Sarah Miles. 1941,영국)는
대단한 거장배우들 사이에서도 자기 몫은 충분히 하였고,
로버트 밋첨의 중후한 연기 역시 묵직한 느낌이 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닥터 지바고’에서
이미 데이빗 린과 손발을 맞춰온 프랑스 출신의 작곡가,
모리스 잘(Maurice Jarre. 1924-2009. 리옹)은
이번에도 역시 대작에 걸 맞는 멋진 주제음악을 다시 들려주었다.
바람 소리와 함께 첫 장면에서부터 들려오는
이 아름다운 메인 테마(Theme)곡은 이후에도 계속 변주를 통한
반복이 연속된다.
그러나, 누구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백치, 마이클이 등장을 하여
절뚝거리며 걷는 장면들마다 코믹한 스타일로 나오는 음악은
별로 좋게 들리지가 않는다.
특히 도리안 소령의 훈장을 바닷가(정사 현장)에서 주워,
가슴에 달고 마을에 나타나 마을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을 때
행진곡풍으로 나오는 음악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아마 이런 넌 센스적인 요인들 (음악 연출)도 영화 전체혹평의
빌미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이 영화의 명장면인 양산이 날라 가는 장면(아래 포스터)에서
들리는 그 아름다운 메인 테마(Theme)곡은 누가 들어도 금방
명곡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섬마을 선생님, 찰스는 사택에 있는 축음기를 매우 아끼고,
또 자주 그 기계를 이용하여 음악을 듣는데, 당시의 영국 정부가
듣기를 금지시켰다는 (적국의) 베토벤을 매우 좋아하여서
(그의 흉상도 거실에 있음) ‘운명 교향곡’을 비롯한 몇 곡의
베토벤 음악이 영화 초반부에 등장을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영화에서와 같이 LP 레코드는 분명히 없었을 텐데?)
“사랑해서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로
시작하는 우리의 옛 전통가요가 있다.
사랑해서 안 될 거라면 애당초 시작도 하지 않아야 하는 건데,
그러나 어리석은 게 우리들 인간이 아니겠는가?
안 되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빠져드는 약한 인간의 이런
어리석음은 그래서 오래전서부터 많은 소설과 이런 영화들의
좋은 소재가 되어 왔었는데 역시 결말들은 거의 다 비극적이다.
하지만,
또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내야만 결국 장사도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족. 1) 미국의 평론가들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에 관해 1908년이다 또는 1920년대이다 라고
다들 임의로 해석들을 하였는데, 물론 정확한 해는 말하기 힘들겠지만,
1910년대의 중반에서 말경이 그 정답이 될 듯합니다.
우선 도리안 소령이 1차 대전에 참전하여 프랑스 최전방에서 부상을
당하고 왔으니, 이는 전쟁이 발발한 1914년 이후라는 얘기고,
또 극중에서 마을 주민들이 차라리 점령군인 영국군이 (적국인)
독일군에게 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로 보아서는 아직도
(1차 대전)종전 전이라는 뜻이니 분명 1917년 전이라는 얘기죠.
따라서 이 영화는 1914년에서 1917년 사이의 이야기인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사족.2) 드디어 이 영화의 DVD가 미국과 한국에서 2006년 봄에
(Two Disc Special Edition) 출시가 되었습니다.
* 관련 동영상 모음:
revised. Feb.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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