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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이야기들-1960년대하

25시 / The 25th Hour 음악적 리뷰 + 음악과 동영상 모음

by 음악평론가김제건 2012. 3. 7.
25시 / The 25th Hour 음악적 리뷰 + 동영상 모음
각본+감독: Henri Verneuil / 주연: Anthony Quinn + Virna Lisi
1967년 / 음악: Georges Delerue + Maurice Jarre / 130분



“하루는 24시간 밖에 안 되니,
너는 부디 시간을 낭비 하지 말거라.“

루마니아 정교회의 신부(神父)인 아버지가
작가인 아들에게 걱정스럽게 말을 건네자,
그 아들이 이렇게 대답을 한다.
“24시는 이미 다 낭비를 했어요. 이젠 25시 예요.
과연 누가 이제부터 살아남을지가 걱정입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등장을 하는
이런 심각한 대화 속에서의 ‘25시’는 과연 무슨 뜻인가?
작가로서의 자신을 상징하는 가공인물(Alter Ego)로서
이 영화에 등장을 하는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
(Constantin Virgil Gheorghiu.1916-1992. 루마니아)

“최후의 마지막 시간“, 즉,
하나님의 구원조차도 차단이 된 절망과 불안의 시간을
바로 ‘25시(The 25th Hour)’라고 규정하였다.



독일, 하이델베르그에도 유학을 갔었던 루마니아의
인텔리 작가로서, 2차 대전 말에 루마니아가 소련 공산당의
지배를 받자, 1946년에 프랑스 빠리로 망명을 한 게오르규는
자신의 어머니께서 직접 제목을 지어주셨다는
‘25시(La Vingt-Cinquième Heure)’
삼 년 후, 1949년에 출간하였다.
그리고 1963년에는 아버지처럼 루마니아 정교회, 빠리 교회의
사제가 되어, 공산 체제에 맞선 투쟁을 벌려나가는데,
한국의 반공 정책에도 전폭적인 지지를 하면서,
1974년부터 모두 다섯 번이나 내한을 하며,
우리나라를 제2의 고향이라고 표현하였었다.
그는 ‘한국 찬가’를 출간한 바도 있는데,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의 남편으로서도 잘 알려진
이태리의 큰 손 영화 제작자,
카를로 폰티(Carlo Ponti. 1912-2007)가 만든 이 영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로 다시 한 번 더 부상을 하게 된다.



작가 자신을 상징하는 가공인물,
트라얀(Trajan Koruga/ Serge Reggiani)역으로
영화 속에도 등장을 하여, 초반부에 신부인 아버지와
‘25시’에 관한 대화를 나눈 그는 같은 고향,
즉 루마니아의 어느 시골, 폰타나 출신의 농부,
요한 모리츠(Anthony Quinn. 1915-2001. 멕시코)
7년 만에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재회를 하는데,
요한을 위해 65번째가 되는 석방탄원서를 대신 써주다,
“25시는 마지막 시간이다.” 라고 요한에게 말을 한 후,
자신의 안경을 잘 보관 해달라면서 자살을 하듯,
철조망으로 걸어가 경비원의 총탄에 쓰러진다.
이런 심오한 설정속의 이 작품에 등장하는
불쌍하기가 그지없는 우리들의 주인공,
요한 모리츠(Johann Moritz).
그의 부인,
수잔나(Suzanna/Virna Lisi. 1936. 이태리)에게
정욕을 품은 마을의 경찰소장의 못된 음모 때문에
무려 만 8년(햇수로는 10년)동안이나,
영문도 모른 채 이리저리로 끌려 다니면서,
전쟁 하의 모든 고통들을 혼자 다 겪게 된다.
영화 초반에 들려오는 히틀러의 연설과 함께
시작이 된 전쟁이라는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이 한 농부의 존재가치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1939년3월15일,
루마니아의 폰타나.
요한의 아들이 세례를 받으며(위의 사진) 시작이 된
평화롭고 즐겁던 축제의 분위기는 며칠 후,
출두 명령서를 들고 경찰서로 갔던 요한이
영문도 모른 채, 유태인 노동 캠프로 졸지에 끌려가면서
비극의 분위기로 반전이 된다.
수잔나의 숫한 탄원에도 불구하고, 일 년 반 동안이나
운하를 파는 막 노동일을 해오던 요한에게
어느 날 수잔나의 이혼 통고 소식이 들려오고,
이에 상심한 요한은 몇 몇 유태인들과 함께
1940년10월7일,
독일의 루마니아 침공과 때를 같이하여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얼마 후, 헝가리 경찰에 체포가 되면서
루마니아 스파이로 몰린 그는 헝가리 지원노동자 신분인
쟝 모르츠로 개명이 된 후, 독일로 보내진다.
독일의 오렘버그 수용소에서 또 다시 힘든 노동으로
2년의 시간을 보낸 1942년12월 어느 날,
뮐러 대령에게 공장 안에서 우연히 발견이 된 그는
아리안 종족 혈통의 우수 종 본보기로 선정이 되면서
일약, 게르만 민족의 스타로 발돋움을 한다.



독일 제국에서 출간이 되던 무려 3,728개의 잡지의
표지모델이 되며 유명해진 그는 SS 유니폼을 입은 채,
포로수용소를 지키는 독일군인 경비가 되는데,(위의 사진)
루마니아 출신의 순박한 한 농부의
인생 유전 치곤 참으로 엄청난 출세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일 년 반이 지난, 1944년4월20일,
연합군의 소련군이 루마니아로 진격을 할 무렵,
우연히 포로들과 함께 미군 캠프로 탈출하게 되는 그는
그러나 독일군 유니폼을 입고 찍힌 사진들 때문에
전쟁포로가 되면서 전범으로 몰리고,
1946년 9월,
고향친구인 작가, 트라얀도 죽고 나고
이내 연합군의 군사 법정에 서게 된다.
피고 측 변호사를 통해 공개 되는 수잔나의 편지(내용).
경찰서장의 강압에 의해 이혼서류에 사인을 하고,
고향을 지키던 그녀는 요한의 독일병정 사진 때문에
피신을 하였다가, 곧 러시아군에 잡히고 마는데,
그들에게 그만 성폭행을 당한 그녀는 이듬해
세 번째 아이 마르코를 낳게 되었다는 기막힌 내용이다.
그가 집을 떠나 온지 어언 10년이 지난
1949년11월,
독일의 어느 기차역. (아래 사진)
열차에서 내린 요한은 두리번거리다 건너편에 서있는
아내와 아들들을 보고 다가가는데,
이를 취재하려 나타난 기자는 모두를 함께 세워놓고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웃어요! 계속 웃어요!”
두 살배기 세 째 아이를 안고 억지웃음을 짓던
요한의 얼굴은 그러나 이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이 리뷰의 맨 위 사진)



이 영화를 본 이들에게 너무나 강렬하게 각인이 되었던
이 마지막 장면에서의 앤소니 퀸(Anthony Quinn)
기가 막힌 표정 연기는 정말로 압권이 아닐 수 없는데,
바로 그 순간에 들려오던
이 영화 음악의 메인 테마(Main Theme)곡 또한
인상적인 그 장면의 감동을 배가 시켰다.
이 장면뿐 만아니라, 오프닝 크레디츠(Opening Credits)와
여러 장면에서도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들을 수가 있었던
이 곡은 루마니아 전통음악에서 흔히 사용되는 민속 목재 현악기,
코브자(Cobza/Koboz)로
(로마시대부터 있었던 류트종류의 현악기)

주 멜로디가 연주 되었다고 하는데,
주인공, 요한 모리츠가 10년간이나 겪은 절망과 불안의 시간을
대변하듯이 잔잔하면서도 슬픈 분위기로 잘 묘사되었다.

* 주제곡이 흐르는 이 영화의 기막힌 마지막 장면:






누벨 바그(Nouvelle Vague) 세대의 일원임을 자처하며,
프랑수아 트뤼포 (Francois Truffaut)등과 함께 힘을 합쳐
‘피아니스트를 쏴라(Tirez sur le Pianiste. 1960)‘,
‘쥘과 짐(Jules et Jim/Jules and Jim. 1962)‘등의
영화 음악을 만들면서 성공적인 1960년대 초를 보냈던
조르쥬 들르뤼 (Georges Delerue. 1925-1992. 프랑스)
전체 오리지널 스코어(OS)를 작곡하였다.
그런데, 작품 크레디츠(Credits)에는 그 이름이 없지만,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1962)‘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1965)‘ 등으로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음악상을 무려 네 번이나 수상한바있는
모리스 자르 (Maurice Jarre. 1924-2009. 프랑스)
공동으로 작업을 하였다고 하니 더욱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조르쥬 들르뤼는 죽기 직전인 1990년대 초까지도
수많은 영화음악을 열심히 만들었지만,
그에게 유일한 미국 아카데미상(1980)을 안겨주었던
‘리틀 로맨스 (A Little Romance. 1979)‘
‘플래툰 (Platoon. 1986)‘ 같은 작품에다
유명한 클래식 음악을 한곡씩 삽입 음악으로 사용하기로
또한 유명하였다.



유럽에서는 ‘25시(The 25th Hour)’보다도
‘La Vingt-Cinquième Heure‘ 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진
이 작품에 과연 앤소니 퀸(Anthony Quinn)이 출연을
하지 않았더라도 괜찮은 영화가 되었을까?
‘길(La Strada / The Road. 1954)’,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 1964)’, 그리고
‘산타 비토리아의 비밀(The Secret of Santa Vittoria. 1969)'
마찬가지 이었지만,
그가 없는 이 작품이란 정말로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만큼 순박한 요한 모리츠역으로서의 완벽한 연기를 보여
주었는데, 이런 대배우의 엄청난 연기를 요즘 21세기에서는
보기 힘들다는 게 너무나도 아쉽다.
터키에서 태어나 이 작품을 포함하여 총 42편을 감독한
앙리 베르뉴(Henri Verneuil. 1920–2002)로서는
알랑 드롱(Alain Delon), 장 가뱅(Jean Gabin )등에 이어
바다를 건너 온 앤소니 퀸하고도 함께 일을 하면서,
언제나 배우 복은 넉넉하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받았지만,
그의 전매특허 같았던 마초 무비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이 작품을 통하여 연출 실력의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한편, 2002년도에 스파이크 리(Spike Lee) 감독이 만든
동명의 또 다른 ‘25시(25th Hour)’
왜 제목이 그런지 이유를 알기가 쉽지 않다.



* 관련 동영상 모음:















Jay. 266번째 영화리뷰. Mar.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