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탈출 / Exodus 음악적 리뷰 + 동영상 모음
1960년/제작 + 감독:Otto Preminger/주연:Paul Newman + Eva Marie Saint 외
음악: Ernest Gold/ 70mm, 208분
모세(Moses)가 이집트에서 포로로 잡혀 노예생활을
해오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던 구약시대의 그 역사적인 사실
(BC 13세기경으로 추정)을 라틴어로
‘엑소더스(Exodus)' 라고 한다.
이 영화(제목)에서의 ‘엑소더스’는 1947년에 있었던
20세기의 ‘出 애굽記’ 같은
‘출 키프러스(사이프러스)記’라고 할 수가 있겠고,
또 그 때 유태인들을 태우고 이스라엘로 항해하였던
낡은 화물선의 이름도 바로 다름 아닌
엑소더스(Exodus)이다.
그리고 상영시간이 3시간 반이나 되는 이 대작의 주제는
수많은 역경을 이기고 1948년(5월14일)에 드디어
독립국가가 된 이스라엘의 건국 일화중 하나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간신히 살아남은 유럽각국의
수많은 유태인들은 성경에 분명히 명시되어있는 민족의
고향, 팔레스타인(Palestine)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였으나,
당시에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영국정부는
이들의 이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태인들이 타고 가던 배들을 나포하여 키프러스
(사이프러스/ Cyplus)로 예인하고, 그곳에 마련된 유태인
자치수용소에다 이들을 강제로 붙잡아두고 있었다.
한편, 국제연합(U. N.)이 팔레스타인문제의 (분할 자치 안)
투표를 하기 전에 이 사이프러스의 문제에 세계 여론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낀 1947년의 ‘이스라엘
건국준비 위원회(National Committee)’는
유태인 정보요원 간부(Commander)인 (위의 사진),
알리 벤 캐나언(Ari Ben Canaan-Paul Newman,
1925-2008. 오하이오)을 이곳에 파견시켜
구약성경의 선조, 모세와 비슷한 일을 하게 만든다.
알리는 영국군 고위 장교로 위장을 하고
‘다윗 별(Star Of David)’호로 이곳에 온 611명을 유럽으로
도로 돌려보낸다는 서류를 위조하여, 낡은 화물선 ‘올림피아
(Olympia)‘호에 전부 승선을 시키는데 (아래사진),
뒤늦게 이를 눈치 챈 영국군에 의해 항구가 봉쇄 되는
위기를 맞지만 배에 탄 유태인들은 자폭 위협과
단식 투쟁으로 이에 맞선다.
* 아래 흑백사진이 당시의 실제 엑소더스 호의 모습:
종군 기자였던 남편이 일 년 전에 순직한 장소인
팔레스타인과 사이프러스를 여행하던 미국인 전직 간호사,
키티 프리몬트(Kitty Fremont-Eva Marie Saint, 1924,
뉴저지)는 이곳, 수용소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중에
캐런(Karen-Jill Haworth, 1945, 영국)을
만나 정이 들게 되고, 양녀로 미국에 데리고 가고
싶어 하는데,
그녀가 승선한 올림피아 호에서 만난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지휘관 알리와 그를 따르는 시오니스트(Zionist)
일행들을 점차 이해하게 된다.
한편, 올림피아 호의 이름을 ‘엑소더스‘로 바꾸고,
어린이들까지 가세하여 죽기를 각오한 단식투쟁을
계속하던 알리 일행은 매스컴을 통하여, 이를 마침내
세계적인 여론화를 하는데 성공을 하고, 영국정부도
결국 이들에게 마지못해 항해 허가를 내주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엑소더스호는 (현)이스라엘의
하이파(Haifa)항에 무사히 도착을 한다.
* 이 사건에 관한 당시 뉴욕타임스의 기사들:
마치 축구 경기의 전 후반같이 제작이 된 이 작품에서
후반부의 이야기는 본격적인 이스라엘 건국준비
투쟁과정을 알리 캐나언(가나안)의 가족들,
즉, 하가나(Haganah)의 고위층인 아버지,
발락 벤 캐나언(Barak Ben Canaan-Lee J. Cobb,
1911-1976, 뉴욕)과 테러와 폭력으로 독립을
이루려는 지하조직, 일군(Irgun)의 사령관인 삼촌,
아키바(Akiva Ben Canaan-David Opatoshu,
1918-1996, 뉴욕)등을 중심으로 그리고 있는데,
동료들을 탈옥시키려다 총상을 입고 죽을 번한 알리를
간호하면서 점차 그를 사랑하게 된 키티도 결국 이곳
키부츠(Kibbutz)에서 함께 투쟁을 하게 된다.
한편 유엔의 투표결과로 분할 자치 안이 통과되면서
이제 이스라엘의 건국이 임박하여지자,
이번에는 아랍인들이 이들을 공격해오기 시작하는데,
그런 와중에서 캐런과 그동안 한마을에서 사이좋게 살던
아랍인친구, 타하(Taha-John Derek, 1926-1998,CA)등이
함께 희생을 당한다.
캐런과 타하를 나란히 묻으면서 (아래 사진)
알리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조사를 남기며,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평화로운 천국으로 간 이스라엘의 딸, 캐런과 아랍의 아들,
타하가 나란히 누운 이 땅에서 비록 다른 민족일지라도 다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그날까지 우리는 계속 투쟁 할 것이다.“
영화의 끝 장면이 예고하였듯이,
이런 어려움들을 이기고 건국을 한 후에도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는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제1차 중동전쟁(1948-1949)에서 부터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까지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몇 십 배 인구의
아랍세력들과 계속 충돌을 하면서도 굳건히 나라를
잘 지켜가고 있다.
오늘날에도 이 팔레스타인 문제는 월드뉴스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여전히 등장을 하고 있지만,
여러 다민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이곳 중동의
문제는 앞으로도 쉽게 풀릴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강대국, 미국에서만 무려 600만 명이나 살고 있는
유태인들의 여론 향배야말로 향후 이 ‘중동의 화약고’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미국 토박이,
레온 유리스(Leon Uris. 1924-2003, 볼티모어)가
쓴 원작을 이렇게 제2차 중동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당시에 인기절정에 있던 폴 뉴먼(Paul Newman)등을
기용하여 영화화한 미국 메이저 영화사의 제작자
(사장 포함)역시 유태인이다 보니 우리는 이 영화를
만든 목적이 그리 단순하지만 않음을 누구나 쉽게
짐작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들이 시작될 때
그 프로그램의 제목과 함께 들리는 음악을 방송인들은
일반적으로 ‘시그널 뮤직’ (잘못된 용어)이라고 표현
했었는데, 근래에는 우리가 직접 작곡을 하여
사용을 하지만 예전에는 보통 웅장한 느낌을 주는
(외국의) 악단 연주음악들을 주로 선곡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제곡도 시그널 뮤직, 즉
‘오프닝 테마(Theme)’곡으로 오랫동안 사용이 되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1961년에 (흑백) TV 방송이 시작되면서
매 주말의 밤마다 어김없이 볼 수가 있었던
바로, ‘주말의 영화(명화)’시간이 시작될 때에
항상 들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곡 외에도 3개의 공중파 방송(KBS, MBC, TBC)에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9)' 와
'모정(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1955)'의
주제곡등도 오프닝 음악으로 사용을 했었지만,
역시 이런 영화주제곡들이 공통적으로 전해 주는
그 웅장하고 장엄한 느낌은 새로운 영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끔 하였다.
한국에선 원오원 스트링스(101 Strings)와
헨리 맨시니 악단(Henry Mancini Orchestra)의 연주로
가장 유명했었던 이 주제곡은 이렇게 언제나 매 주말마다
들을 수가 있었지만,
이곡은 영화개봉 후에 팻 분(Pat Boone)과 앤디 윌리엄스
(Andy Williams), 그리고 카니 후랜시스(Connie Francis)등의
노래로도 196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히트를 하였었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바로 (죽는 날까지) 나의 땅이다.”
라고 시작되는 이 ‘엑소더스 송(The Exodus Song)
(가수 팻 분 이 직접 작사함)’의 숙연한 가사도 들을 때마다
이 영화의 명장면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 팻 분 과 앤디 윌리엄스의 버전 외:
This land is mine
God gave this land to me
This plain and ancient land to me
And when the morning sun
Rises o'er hill and tree
Then I'll see a land
Where children can run free
So take my hand
And walk this land with me
The plain and ancient land with me
Though I am but a man
When you are by my side
With the help of God
I know I can be strong
To make this land my own
If I must fight
I'll fight to make this land my own
Until I die, this land is mine!
* Maksim Mrvica의 피아노 연주:
유럽의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이미 1945년부터 할리우드에서 활동을 하면서
‘피크닉 (Picnic.1948)', ‘흑 과 백(The Defiant Ones. 1958)',
‘그날이 오면(On The Beach. 1959)’ 등으로 명성을 쌓아온
어니스트 골드(Ernest Gold. 1921-1999, 비엔나)가
오리지널 스코어(OS)를 만들었는데,
영화 못지않게 대단한 선풍을 일으킨 바로 이 주제곡으로
그는 드디어 생애의 유일한 오스카상을 받게 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리스의 작곡가,
마노스 하디다키스(Manos Hadjidakis.1925-1994)가 만든
‘일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 1960)’의
주제 노래가 주제가 상을 받던 1961년, 제33회, 아카데미의
음악상(Best Music Scoring)을 수상한 그는 뒤이어 이 OST
앨범으로 1961년의 그래미상도 함께 받는 영예를 누렸고,
‘산타 비토리아의 비밀(The Secret Of Santa Vittoria. 1969)’의
음악으로 1970년에 또 다시 아카데미상의 후보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일군(Irgun)조직에서
폭탄 테러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린 도브(Dov Landau-캐런의 남자친구)역을 잘 소화한
살 미네오(Sal Mineo. 1939-1976,뉴욕)(아래 사진)도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의 후보가 되었지만,
정작 상은 골든 글로브와 로렐 상(Laurel Awards)에서
남우조연상을 받게 되었는데, 작품의 스케일을 고려한다면
이 영화의 각종 수상실적은 매우 저조한 편이었다.
얼마 전에 주한 이스라엘 대사께서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하면서 관심을 끌었었다.
구약시대에 이미 아프리카를 포함하여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진 '이스라엘의 12지파(그들과 지금 싸우는 아랍도
이중의 한 지파이다)’ 중에서 동쪽으로 향했던 한 지파만이
유독 아직까지도 그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혹시 단군께서 이 한 지파의 리더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고 한다.
그 정도로 두 나라의 국민성 가운데에는 유사한 점들이
(음식과 언어의 일부 포함) 너무나 많다는 것인데,
글쎄? 반만년전의 역사 이다보니 이제 와서 이를 어떻게
증명 할 수는 없겠지만, 외세에 의해 역사적으로 숫한
고통들을 받아왔고, 건국과정도 서로 비슷하며,
한국인 역시 극동의 유태인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흔히 불리기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할만도 하겠다.
어쨌든 건국 6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다 같이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중동의 화약고, 팔레스타인과
또 극동의 화약고, 한반도의 복잡한 문제들이
부디 평화롭게 앞으로 잘 해결이 되기를
이 글을 통해 다만 바랄뿐이다.
* 관련 동영상 모음:
revised. Apr. 2019.
1960년/제작 + 감독:Otto Preminger/주연:Paul Newman + Eva Marie Saint 외
음악: Ernest Gold/ 70mm, 208분
모세(Moses)가 이집트에서 포로로 잡혀 노예생활을
해오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던 구약시대의 그 역사적인 사실
(BC 13세기경으로 추정)을 라틴어로
‘엑소더스(Exodus)' 라고 한다.
이 영화(제목)에서의 ‘엑소더스’는 1947년에 있었던
20세기의 ‘出 애굽記’ 같은
‘출 키프러스(사이프러스)記’라고 할 수가 있겠고,
또 그 때 유태인들을 태우고 이스라엘로 항해하였던
낡은 화물선의 이름도 바로 다름 아닌
엑소더스(Exodus)이다.
그리고 상영시간이 3시간 반이나 되는 이 대작의 주제는
수많은 역경을 이기고 1948년(5월14일)에 드디어
독립국가가 된 이스라엘의 건국 일화중 하나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간신히 살아남은 유럽각국의
수많은 유태인들은 성경에 분명히 명시되어있는 민족의
고향, 팔레스타인(Palestine)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였으나,
당시에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영국정부는
이들의 이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태인들이 타고 가던 배들을 나포하여 키프러스
(사이프러스/ Cyplus)로 예인하고, 그곳에 마련된 유태인
자치수용소에다 이들을 강제로 붙잡아두고 있었다.
한편, 국제연합(U. N.)이 팔레스타인문제의 (분할 자치 안)
투표를 하기 전에 이 사이프러스의 문제에 세계 여론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낀 1947년의 ‘이스라엘
건국준비 위원회(National Committee)’는
유태인 정보요원 간부(Commander)인 (위의 사진),
알리 벤 캐나언(Ari Ben Canaan-Paul Newman,
1925-2008. 오하이오)을 이곳에 파견시켜
구약성경의 선조, 모세와 비슷한 일을 하게 만든다.
알리는 영국군 고위 장교로 위장을 하고
‘다윗 별(Star Of David)’호로 이곳에 온 611명을 유럽으로
도로 돌려보낸다는 서류를 위조하여, 낡은 화물선 ‘올림피아
(Olympia)‘호에 전부 승선을 시키는데 (아래사진),
뒤늦게 이를 눈치 챈 영국군에 의해 항구가 봉쇄 되는
위기를 맞지만 배에 탄 유태인들은 자폭 위협과
단식 투쟁으로 이에 맞선다.
* 아래 흑백사진이 당시의 실제 엑소더스 호의 모습:
종군 기자였던 남편이 일 년 전에 순직한 장소인
팔레스타인과 사이프러스를 여행하던 미국인 전직 간호사,
키티 프리몬트(Kitty Fremont-Eva Marie Saint, 1924,
뉴저지)는 이곳, 수용소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중에
캐런(Karen-Jill Haworth, 1945, 영국)을
만나 정이 들게 되고, 양녀로 미국에 데리고 가고
싶어 하는데,
그녀가 승선한 올림피아 호에서 만난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지휘관 알리와 그를 따르는 시오니스트(Zionist)
일행들을 점차 이해하게 된다.
한편, 올림피아 호의 이름을 ‘엑소더스‘로 바꾸고,
어린이들까지 가세하여 죽기를 각오한 단식투쟁을
계속하던 알리 일행은 매스컴을 통하여, 이를 마침내
세계적인 여론화를 하는데 성공을 하고, 영국정부도
결국 이들에게 마지못해 항해 허가를 내주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엑소더스호는 (현)이스라엘의
하이파(Haifa)항에 무사히 도착을 한다.
* 이 사건에 관한 당시 뉴욕타임스의 기사들:
마치 축구 경기의 전 후반같이 제작이 된 이 작품에서
후반부의 이야기는 본격적인 이스라엘 건국준비
투쟁과정을 알리 캐나언(가나안)의 가족들,
즉, 하가나(Haganah)의 고위층인 아버지,
발락 벤 캐나언(Barak Ben Canaan-Lee J. Cobb,
1911-1976, 뉴욕)과 테러와 폭력으로 독립을
이루려는 지하조직, 일군(Irgun)의 사령관인 삼촌,
아키바(Akiva Ben Canaan-David Opatoshu,
1918-1996, 뉴욕)등을 중심으로 그리고 있는데,
동료들을 탈옥시키려다 총상을 입고 죽을 번한 알리를
간호하면서 점차 그를 사랑하게 된 키티도 결국 이곳
키부츠(Kibbutz)에서 함께 투쟁을 하게 된다.
한편 유엔의 투표결과로 분할 자치 안이 통과되면서
이제 이스라엘의 건국이 임박하여지자,
이번에는 아랍인들이 이들을 공격해오기 시작하는데,
그런 와중에서 캐런과 그동안 한마을에서 사이좋게 살던
아랍인친구, 타하(Taha-John Derek, 1926-1998,CA)등이
함께 희생을 당한다.
캐런과 타하를 나란히 묻으면서 (아래 사진)
알리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조사를 남기며,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평화로운 천국으로 간 이스라엘의 딸, 캐런과 아랍의 아들,
타하가 나란히 누운 이 땅에서 비록 다른 민족일지라도 다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그날까지 우리는 계속 투쟁 할 것이다.“
영화의 끝 장면이 예고하였듯이,
이런 어려움들을 이기고 건국을 한 후에도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는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제1차 중동전쟁(1948-1949)에서 부터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까지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몇 십 배 인구의
아랍세력들과 계속 충돌을 하면서도 굳건히 나라를
잘 지켜가고 있다.
오늘날에도 이 팔레스타인 문제는 월드뉴스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여전히 등장을 하고 있지만,
여러 다민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이곳 중동의
문제는 앞으로도 쉽게 풀릴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강대국, 미국에서만 무려 600만 명이나 살고 있는
유태인들의 여론 향배야말로 향후 이 ‘중동의 화약고’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미국 토박이,
레온 유리스(Leon Uris. 1924-2003, 볼티모어)가
쓴 원작을 이렇게 제2차 중동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당시에 인기절정에 있던 폴 뉴먼(Paul Newman)등을
기용하여 영화화한 미국 메이저 영화사의 제작자
(사장 포함)역시 유태인이다 보니 우리는 이 영화를
만든 목적이 그리 단순하지만 않음을 누구나 쉽게
짐작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들이 시작될 때
그 프로그램의 제목과 함께 들리는 음악을 방송인들은
일반적으로 ‘시그널 뮤직’ (잘못된 용어)이라고 표현
했었는데, 근래에는 우리가 직접 작곡을 하여
사용을 하지만 예전에는 보통 웅장한 느낌을 주는
(외국의) 악단 연주음악들을 주로 선곡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제곡도 시그널 뮤직, 즉
‘오프닝 테마(Theme)’곡으로 오랫동안 사용이 되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1961년에 (흑백) TV 방송이 시작되면서
매 주말의 밤마다 어김없이 볼 수가 있었던
바로, ‘주말의 영화(명화)’시간이 시작될 때에
항상 들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곡 외에도 3개의 공중파 방송(KBS, MBC, TBC)에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9)' 와
'모정(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1955)'의
주제곡등도 오프닝 음악으로 사용을 했었지만,
역시 이런 영화주제곡들이 공통적으로 전해 주는
그 웅장하고 장엄한 느낌은 새로운 영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끔 하였다.
한국에선 원오원 스트링스(101 Strings)와
헨리 맨시니 악단(Henry Mancini Orchestra)의 연주로
가장 유명했었던 이 주제곡은 이렇게 언제나 매 주말마다
들을 수가 있었지만,
이곡은 영화개봉 후에 팻 분(Pat Boone)과 앤디 윌리엄스
(Andy Williams), 그리고 카니 후랜시스(Connie Francis)등의
노래로도 196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히트를 하였었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바로 (죽는 날까지) 나의 땅이다.”
라고 시작되는 이 ‘엑소더스 송(The Exodus Song)
(가수 팻 분 이 직접 작사함)’의 숙연한 가사도 들을 때마다
이 영화의 명장면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 팻 분 과 앤디 윌리엄스의 버전 외:
This land is mine
God gave this land to me
This plain and ancient land to me
And when the morning sun
Rises o'er hill and tree
Then I'll see a land
Where children can run free
So take my hand
And walk this land with me
The plain and ancient land with me
Though I am but a man
When you are by my side
With the help of God
I know I can be strong
To make this land my own
If I must fight
I'll fight to make this land my own
Until I die, this land is mine!
* Maksim Mrvica의 피아노 연주:
유럽의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이미 1945년부터 할리우드에서 활동을 하면서
‘피크닉 (Picnic.1948)', ‘흑 과 백(The Defiant Ones. 1958)',
‘그날이 오면(On The Beach. 1959)’ 등으로 명성을 쌓아온
어니스트 골드(Ernest Gold. 1921-1999, 비엔나)가
오리지널 스코어(OS)를 만들었는데,
영화 못지않게 대단한 선풍을 일으킨 바로 이 주제곡으로
그는 드디어 생애의 유일한 오스카상을 받게 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리스의 작곡가,
마노스 하디다키스(Manos Hadjidakis.1925-1994)가 만든
‘일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 1960)’의
주제 노래가 주제가 상을 받던 1961년, 제33회, 아카데미의
음악상(Best Music Scoring)을 수상한 그는 뒤이어 이 OST
앨범으로 1961년의 그래미상도 함께 받는 영예를 누렸고,
‘산타 비토리아의 비밀(The Secret Of Santa Vittoria. 1969)’의
음악으로 1970년에 또 다시 아카데미상의 후보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일군(Irgun)조직에서
폭탄 테러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린 도브(Dov Landau-캐런의 남자친구)역을 잘 소화한
살 미네오(Sal Mineo. 1939-1976,뉴욕)(아래 사진)도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의 후보가 되었지만,
정작 상은 골든 글로브와 로렐 상(Laurel Awards)에서
남우조연상을 받게 되었는데, 작품의 스케일을 고려한다면
이 영화의 각종 수상실적은 매우 저조한 편이었다.
얼마 전에 주한 이스라엘 대사께서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하면서 관심을 끌었었다.
구약시대에 이미 아프리카를 포함하여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진 '이스라엘의 12지파(그들과 지금 싸우는 아랍도
이중의 한 지파이다)’ 중에서 동쪽으로 향했던 한 지파만이
유독 아직까지도 그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혹시 단군께서 이 한 지파의 리더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고 한다.
그 정도로 두 나라의 국민성 가운데에는 유사한 점들이
(음식과 언어의 일부 포함) 너무나 많다는 것인데,
글쎄? 반만년전의 역사 이다보니 이제 와서 이를 어떻게
증명 할 수는 없겠지만, 외세에 의해 역사적으로 숫한
고통들을 받아왔고, 건국과정도 서로 비슷하며,
한국인 역시 극동의 유태인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흔히 불리기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할만도 하겠다.
어쨌든 건국 6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다 같이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중동의 화약고, 팔레스타인과
또 극동의 화약고, 한반도의 복잡한 문제들이
부디 평화롭게 앞으로 잘 해결이 되기를
이 글을 통해 다만 바랄뿐이다.
* 관련 동영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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